정의
고려후기 지문하사, 문하평리, 판개성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71년 신돈이 주살된 뒤에 풀려나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다. 1375년(우왕 1) 경상도부원수로서 왜적을 물리쳤으며, 1377년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있을 때 왜구를 무찔러 이 지역이 평온하였다 한다.
1379년 양백연(楊伯淵)을 주살할 때 지문하사(知門下事)로 이에 연루되어 수졸(戍卒)이 되었다. 1389년(창왕 1) 문하평리(門下評理)로 첨서밀직사사(詹書密直司事) 권근(權近)과 함께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때 왕씨(王氏)로 공민왕의 후사를 정하라는 명나라 황제의 지시를 전함으로써 창왕이 폐위되고 정창군 왕요(定昌君 王瑤: 나중에 恭讓王)가 즉위하였다. 뒤에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에 이르렀고, 영평군(鈴平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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