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군자감첨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이칭
  • 사진(士縉)
  • 지석(支石)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치(兵峙) 전투
  • 본관해남(海南)
  • 사망 연도1597년(선조 3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군자감첨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사진(士縉), 호는 지석(支石). 아버지는 천문습독관(天文習讀官) 윤경우(尹景佑)이며, 어머니는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아버지에게서 학업을 닦았고, 벼슬이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의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이 전하여지자, 격문을 띄워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가산(家産)과 자질(子姪)들의 사재를 털어서 병기를 만들고 군량을 마련하여, 가동(家僮) 수십명과 의병 수백명을 거느리고 강진 동령리(東嶺里) 뒷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왜병의 침입을 저지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중형(仲兄) 윤윤(尹綸), 아들 윤동철(尹東喆), 조카 윤치경(尹致敬)과 함께 재침하는 적을 무찔렀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하였다. 그 뒤 그 격전지를 ‘병치(兵峙)’라 하며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 있다. 강진의 화암사(花巖祠)에 봉안하였다. 저서로는 『지석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 - 『화암사지(花巖祠誌)』

  •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 『지석일고(支石逸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