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금성현령, 공조좌랑, 진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일소재(一笑齋)
  • 체원(體元)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기사환국
  • 본관남원(南原)
  • 사망 연도1694년(숙종 2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금성현령|공조좌랑|진산군수
  • 출생 연도1640년(인조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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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금성현령, 공조좌랑, 진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체원(體元), 호는 일소재(一笑齋). 아버지는 장령(掌令) 윤유(尹柔)이며, 병자호란 때 3학사의 한 사람인 윤집(尹集)의 조카가 된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합격하여 동궁세마(東宮洗馬)가 되었다.

일찍이 남인의 영수 윤휴(尹鑴)는 동종(同宗)임을 내세워 윤이건을 같은 당으로 맞아드리려고 하였으나 이에 따르지 않았다. 마침내 윤휴가 득세하여 송시열이 우두머리로 화를 입게 되었는데, 이 때 송시열의 문하에 있었던 것을 들어 옥에 가두고 국문하려고 하였으나, 이조의 반대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1680년(숙종 6) 경신출척이 일어나 윤휴가 사사(賜死)되고 그 당이 모두 쫓겨났으며, 송시열이 환조하여 영부사가 되자 조신들의 천거로 사복시주부로 등용되었다. 이어 금성현령이 되어 나갔으며 공조좌랑·진산군수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공적을 쌓았다.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득세하면서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1694년에 풀려나 귀경 중 청주성 밖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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