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구

  • 교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부산사범학교 초대교장, 부산대학교 초대총장, 연세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종교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3년(고종 40)
  • 출생지부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혁표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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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부산사범학교 초대교장, 부산대학교 초대총장, 연세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종교인.

생애 및 활동사항

부산 출생. 1919년 부산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퇴학당한 다음, 성직자로서의 인생목표를 세우고 1926년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신학부를 거쳐 1931년 영국 에딘버러대학원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같은 해 9월 진주장로교회 강도사로서 첫 출발을 하였다.

1941년 조선신학원을 개설하고 교장이 되어 기독교정신에 따른 민족교육사업에 투신하였으나 일제탄압으로 교장직을 사임하여야만 했다.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부산광복교회를 세워 성직자로서의 길을 계속 밟으면서도, 미군정하 경상남도 내무국 학무과장으로 부임, 당시 무엇보다 민족의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광복기념사업으로서 부산대학 창립안을 계획하여 이듬해 5월 부산대학을 개교시키고, 9월에 따로 부산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이 되었다.

광복 직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주적이고 원활한 학무행정을 수행하고 불굴의 노력과 계획의 성공적 실천으로 미군정장관 표창을 받았다. 1953년 6·25의 상처를 딛고 부산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켜 같은해 11월 초대총장으로 부임하였다.

그의 교육관은 진리·자유·봉사였고, 이것은 1961년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였을 때도 일관되게 견지되었다. 1964년 총장 사임 후에는 지병과 싸우면서도 종교철학연구와 인재양성에 힘썼다. 종교계와 교육계의 큰별이라고 지칭될 만큼 정계진출의 유혹을 뿌리치고 온갖 시련과 불의와 싸우면서 복음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0년 5월 사임할 때까지 현재의 효원에 캠퍼스를 이전시키는 등 교육재건에 공로를 세워 경남교육회의 특별공로상(1958)과 부산시문화상(1959)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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