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충청남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1900년경 윤일선의 선친인 윤치경이 건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상량문에 의하면 1844년에 지어진 집으로 보여지고 있다. 윤씨 일가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1905년에 세운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튼ㅁ자형을 이루며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ㄱ자형으로 된 안채는 2칸 통칸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앞에 툇마루를 둔 건넌방을 드렸는데 이 툇마루 아래에 쇠죽을 끓이던 함실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좌측 꺾어지는 부분에 1칸씩의 안방과 윗방을 드려 방사이에 두짝미닫이를 달아 사용하고 있고 옆에 있는 2칸의 큰 부엌은 나무광과 취사, 조리공간을 한데 갖춘 형식이고 부뚜막 상부에만 다락을 설치하였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고 이 기둥 위에 대들보와 종보를 걸은 5량가구이다.
종보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고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 앞에 ㄴ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사랑채는 남쪽편에 앞에 툇마루를 둔 2칸 통칸의 사랑방과 1칸의 사랑대청을 드려 사랑채의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입구쪽인 서쪽편에는 1칸의 작은사랑방과 2칸의 중문, 1칸 반의 고방과 반 칸의 측간을 나란히 두어 행랑채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특히 대청 앞에 사분합 들어열개를 달아 단칸 대청의 좁은 공간을 넓게 터 남쪽의 넓은 정원을 즐기도록 하였고 2칸으로 된 중문은 한 번 꺾어 안채로 들어가도록 하여 대문이 열렸을 때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공간 구성을 하였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튼ㅁ자형을 이루며 배치되고 있는데 특히 사랑채가 행랑채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는 실용성 있는 주택으로 1900년대 전후의 전통적인 면과 근대적인 특성이 함께 절충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