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충청수군절도사, 형조판서, 찬성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부터 대윤(大尹)·소윤(小尹)으로 나누어 싸움이 노골화되면서 대윤의 거두가 되었다. 1544년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형조판서를 거쳐 찬성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8개월 만에 인종이 죽자,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이 12세로 즉위하여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이때 소윤 윤원형(尹元衡) 일파는 소위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평소 반목하던 대윤 일파를 모두 숙청하였으며, 마침내 윤임은 남해로 귀양가다가 충주에 이르러 사사(賜死)되었다.
훗날 대의라는 측면에서 볼때 윤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이이(李珥)는 사직에 대한 죄가 없다 하였고, 이황(李滉)은 사직에 대한 죄가 없지 않다고 하였다. 1577년(선조 10)에 신원(伸寃)되었고,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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