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직제학, 우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소격서(昭格署)의 혁파에 대하여 정계와 사림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사림을 모함하는 「시간계서(矢幹係書)」에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함께 이름이 열거되기도 하였다.
또, 향약의 보급, 현량과(賢良科) 실시, 위훈삭제(僞勳削除) 등 삼사를 중심으로 한 사림의 입장을 실천시키는 데 핵심인물로 활약하였다. 1519년 의주목사·직제학·우부승지를 거쳐 좌승지로 있을 때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온양으로 중도부처되었다가 다시 북청으로 위리안치되었으며 배소에서 죽었다.
『상서(尙書)』 무일편(無逸篇)을 진강하는 등 학식이 뛰어났고, 무예도 겸비하였기 때문에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홍경주(洪景舟)·남곤(南袞) 등에 의하여 일차적인 제거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538년(중종 33) 기묘사림이 다시 서용되면서 신원되어 직첩이 환급되었고, 1746년(영조 22)에 증직·증시(贈諡)가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해동잡록(海東雜錄)』
- 『청선고(淸選考)』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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