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돈녕부도사, 공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62년 삼남에 민란이 일어나자 임금에게 구폐(捄弊)의 방책을 아뢰고, 장서원별제(掌署院別提)·김포군수를 지냈다. 1864년(고종 1) 대흥군수(大興郡守), 1867년 청풍군수·강릉부사, 1870년 옥구현령 등 지방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선치(善治)하여, 비석이 세워졌다.
1875년에 공조참의·오위장·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 돈녕부사로 파광군(坡光君)에 습봉(襲封)되고 이어 호조참판을 지냈다. 공조판서·도총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84년 80세가 되자 정헌대부(正憲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효성이 지극해 간병할 때 1년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병(兵)·농(農)·율력(律曆)·도상(圖象) 등도 깊이 연구했으나, 경전에 더욱 밝았으며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철종이 즉위하자 헌종의 부묘(祔廟) 등의 문제를 고금의 예전(禮典)을 참고해 『방례고증(邦禮考證)』 2권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상서도전변해(尙書圖傳辨解)」·「사서의의답문수록(四書疑義答問隨錄)」·「예기사문록(禮記思問錄)」·「예람명의고(禮覽名義攷)」·「상례분류(喪禮分類)」·「거안록(居安錄)」·「증자정문부주(曾子正文附註)」·「고사통휘(古史統彙)」·「을사소장록(乙巳消長錄)」·「가국동휴표(家國同休表)」·「율력의난(律曆疑難)」·「유사소전(游史小箋)」 등과 약간의 문집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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