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함평현감, 삼척부사, 통정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임(景任)
  • 기기재(棄棄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원(南原)
  • 사망 연도1676년(숙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함평현감|삼척부사|옥천군수
  • 출생 연도1608년(선조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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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함평현감, 삼척부사, 통정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임(景任), 호는 기기재(棄棄齋). 관찰사 윤세림(尹世臨)의 후손이며, 판관 윤청(尹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윤민신(尹民新)이고, 아버지는 승지 윤길(尹日+吉)이다. 어머니는 증참판 이세량(李世良)의 딸이다. 유계(兪棨)와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64년에 정언을 거쳐 전적·공조좌랑·병조정랑·장령·헌납이 되었다. 당시 서필원(徐必源)의 파직상소 사건 때에는 이경휘(李慶徽)·유상운(柳尙運)과 함께 삼간(三奸)의 한 사람으로 불린 일도 있었다.

그 뒤 1672년 세자시강원문학이 되고, 뒤에 필선·보덕·사예·예빈시정·함평현감·삼척부사를 역임하고 옥천군수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74년 현종이 죽자 갑인예송이 일어났는데, 사간으로 송시열(宋時烈)의 편에 들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676년 진주목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문곡집(文谷集)』(김수항)

  •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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