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장경(長卿). 윤계훈(尹繼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시우(尹時雨)이다. 아버지는 수운판관 윤응상(尹應商)이며, 어머니는 현감 이원우(李元友)의 딸이다. 정철(鄭澈)·김장생(金長生)에게서 수학하였다.
생원으로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4년 병조좌랑·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왕조실록 재간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울산판관에 이어 북평사직강(北評事直講)·용양위(龍驤衛) 부호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이듬해에 죽었다.
윤홍국이 하료(下僚)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정철이 탄핵을 받았을 때 이에 연좌되었으며, 간신 이이첨(李爾瞻)이 윤홍국을 꺼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혼(成渾)을 만났을 때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윤홍국은 옛것을 사모하고 의를 중하게 여겼으며, 세속에 초연하고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