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충청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윤황의 6대 손이며 함안 현감을 지낸 바 있는 윤정진이 1730년(영조 6) 경에 이곳으로 옮겨 건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대대로 윤황 선생 종가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이 가옥의 전체 배치는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자리를 잡았다.
입구 쪽으로 면하여 一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여기를 지나면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아래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고 안채 뒷편 우측에 윤황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으로 된 재실이 위치하고 있다.
바깥마당에 면하여 있는 一자형으로 된 정면 7칸, 측면 3칸의 사랑채는 중앙에 2칸 통칸의 넓은 대청을 만들었다. 이 대청 앞에는 사분합 띠살 들어열개 문을 달아 서까래에 달려 있는 걸쇠에 걸도록 하였다. 대청 우측에는 전면에 툇마루를 둔 1칸의 건넌 사랑방과 1칸의 툇마루를 드렸다.
그중 앞에 있는 툇마루를 높여 그 아래에 함실아궁이를 설치하였고 툇마루에는 난간을 돌려 누(樓)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청 우측에는 툇마루가 달린 2칸의 큰사랑방을 드렸는데 그 옆으로 아래는 부엌으로 사용하고 위는 반침으로 사용하는 1칸의 공간을 두었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이 기둥에 걸쳐서 퇴량과 대들보, 종보를 걸은 오량(五樑) 가구(架構)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사랑채 뒤편 사괴석담장에 낸 일각문을 들어서면 안마당과 면하여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아래채가 있다.
안채는 중앙에 우물마루를 깔은 3칸의 대청과 꺾이는 옆으로 2칸의 안방과 부엌, 그리고 대청 우측에 건넌방을 드렸다. 그리고 안채와 마주보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구획된 아래채는 2칸의 대청과 1칸의 온돌방, 그리고 2칸의 부엌을 나란히 드렸다.
삼량(三樑) 가구(架構)에 지붕은 홑처마 우진각으로 올렸다.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와 재실 등이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위계적으로 남향하여 자리잡은 고택으로 특히 사랑채가 잘 보존되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자연석기단이나 초석, 툇마루의 높낮이 조절에서 오는 리듬감, 목재가 주는 부드러움 등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게 건축된 주택으로 특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