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학은 국가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하여 조선은 국초부터 율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형조에 율학청을 설치하고 교육을 담당할 관원으로 율학교수·율학훈도 등을 두었다.
1426년(세종 8)에는 율문(律文)이 한문과 이두로 복잡하게 쓰여져 문신이라도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율을 배우는 생도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고 문신 중 정통한 자를 가려 따로 훈도를 두도록 하였다.
1430년과 1434년에는 다시 형조에서 건의하기를 “형벌은 사람의 생사가 달렸으므로 심히 중히 여기고 삼가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7품으로 관직을 떠난 자를 훈도에 임명하여 율문을 강습시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