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 관산리 고분 ( )

선사문화
유적
황해남도 은율군 은율읍 관산리에 있는 낙랑군 · 대방군 시기의 고분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초기국가시대(2세기 중엽~3세기)
관련 국가
한나라
재질
벽돌
소재지
황해남도 은율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은율관산리고분(殷栗冠山里古墳)은 황해남도 은율군 은율읍 관산리에 있는 낙랑군 · 대방군 시기의 고분군이다. 관광산 남사면에 분포하는 21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관광산 자락 남쪽에 자리한 고분 2기를 북한에서 조사하였다. 관산리1호분과 2호분은 지상에 봉토분구를 가진 천장까지 벽돌로 축조한 벽돌무덤이다. 서북한 일대의 벽돌무덤과 비교해 볼 때 이 무덤은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대에 조성된 낙랑군 · 대방군 시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
황해남도 은율군 은율읍 관산리에 있는 낙랑군 · 대방군 시기의 고분군.
개요

은율관산리고분은 황해남도 은율군 은율읍 관산리에 있는 낙랑군 · 대방군 시기의 무덤이다. 관광산 남쪽 사면에 21기의 무덤이 분포하며, 관광산 자락의 남쪽에 있는 고분 가운데 2기를 북한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1호와 2호로 편호된 두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있는 벽돌무덤으로, 26m 정도 떨어져 있다.

1호분

1호분의 남아 있는 분구(墳丘)는 동서 길이 16m, 남북 길이 17m의 방대형이며, 무덤 칸은 지하에 있다. 무덤 칸은 널방과 앞방, 널길로 이루어진 두 칸 구조이며, 무덤 입구는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쪽을 향해 있다. 널방은 방형 평면으로 밖으로 배가 부른 형태이다. 크기는 동서 길이 3.2m, 남북 길이 3.15m이다.

앞방은 동서 길이가 약간 긴 방형으로 동서 길이 2.52m, 남북 길이 2.14m이다. 널방과 앞방 사이 통로는 동서 너비 0.93m, 남북 길이 0.65m이고, 통로와 널길은 같은 방향이다. 널방과 앞방의 벽은 벽돌 세 장을 뉘어 쌓은 후 그 위에 한 장을 세워쌓기하였으며, 바닥에서 0.6~0.8m 높이부터 조금씩 안으로 들여쌓았다.

널방 동쪽벽에 붙여서 너비 0.85~1.15m, 길이 2.6m 크기의 제단이 있으며, 앞방의 남쪽 중앙에서 0.85m 되는 바닥 아래에 배수 시설이 있다. 무덤 칸에서 토기의 목 부분에 ‘길(吉)’ 자가 새겨진 백색 단지와 낫으로 추정되는 철기가 출토되었다.

2호분

2호분은 1호분과 같은 두 칸 구조의 벽돌무덤이다. 분구는 동서, 남북 길이 12m의 방대형이며, 널방은 동서 길이 3.16m, 남북 길이 3.63m이고, 앞방은 길이 3.05m, 너비 2.08m이다. 널방과 앞방 사이 통로는 너비 0.85m, 길이 0.815m이다. 널방에는 널받침과 제단이 있으며, 널받침은 동서 2.2m, 남북 너비 2.25m이고, 제단은 동서 너비 0.55~0.6m, 길이 3.5m이다.

의의 및 평가

은율관산리고분의 두 무덤은 천장까지 벽돌로 쌓아 올린 두 칸 구조의 벽돌무덤이다. ‘길(吉)’ 자가 새겨진 백색 단지로 미루어 북한에서는 2세기 후반경으로 연대를 비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기타 자료

정성렬, 「은률군 관산리 1호 및 무덤」(『고고학자료집 6집-락랑구역 일대의 고분발굴 보고 각지의 고대유적 조사보고』, 사회과학원고고학연구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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