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아찬(阿飡)이었다. 삼국통일전쟁기 백제유민이 661년(무열왕 8) 봄 2월에 사비성(泗沘城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을 공격해왔다. 무열왕은 이찬(伊飡) 품일(品日)을 대당장군(大幢將軍)으로 임명하고 잡찬(迊飡) 문충(文忠)을 상주장군(上州將軍)에 임명하는 등 수십명의 장수로 하여금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이 때 의복은 하주장군(下州將軍)에 임명되어 출전하였다. 신라군은 백제군을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다가, 4월 19일에는 퇴각하게 되었다. 대당군과 서당군(誓幢軍)이 먼저 떠나고, 하주군이 뒤에 떨어져 빈골양(賓骨壤 : 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쪽)에 다다랐을 때, 백제군을 만나 싸웠으나 패퇴하였다. 죽은 자는 비록 적었으나 수레와 무기를 많이 잃었으므로 논죄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