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참봉, 산은현감, 향병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군량 조달에 힘쓴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는데 부족한 식량과 군량의 조달에 공이 컸다. 이러한 공에 의하여 수령을 감당할 인재 30명이 천거된 중에 이개립도 포함되어, 1594년에 자여찰방(自如察訪)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낭천현감(狼川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6년 산은현감(山隱縣監)에 임명되고, 다음해 정유재란 때 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 황여일(黃汝一)의 천거로 향병대장(鄕兵大將)이 되었다. 그러나 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가 의병을 자기 휘하에 속하게 하지 않은 데에 사감을 품자, 고향에 돌아가 오로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을 지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학사집(鶴沙集)』
- 『용주유고(龍洲遺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성오당문집(省吾堂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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