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혹은 大仲), 호는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대호군(大護軍) 이욱(李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선동(李善童)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준(李竣)이며,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權氏)로 권공례(權公禮)의 딸이다.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1586년(선조 19)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퇴하였다. 1591년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유일(遺逸: 학문과 덕행이 높아서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중요한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선비)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는데 부족한 식량과 군량의 조달에 공이 컸다. 이러한 공에 의하여 수령을 감당할 인재 30명이 천거된 중에 이개립도 포함되어, 1594년에 자여찰방(自如察訪)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낭천현감(狼川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6년 산은현감(山隱縣監)에 임명되고, 다음해 정유재란 때 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 황여일(黃汝一)의 천거로 향병대장(鄕兵大將)이 되었다. 그러나 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가 의병을 자기 휘하에 속하게 하지 않은 데에 사감을 품자, 고향에 돌아가 오로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