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13도유약소를 설치하고 토역, 항일, 복권에 관한 소를 올린 항일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897년에는 소두(疏頭)가 되어 다시 상소하였고,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궁내부주사로 자강지책을 청하는 연명소를 올렸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석종(李奭鍾)·조재명(趙載明) 등과 13도유약소(十三道儒約所)를 설치하고 6차례에 걸쳐 토역·항일·복권에 관한 소를 올렸다.
또한, 서북청년(西北靑年) 수십명을 규합하여 박제순(朴齊純)·조중응(趙重應) 등을 주살하려다가 일본헌병에 붙잡혀 복역 중 단식으로 순사하자, 일제는 시체를 남대문 밖에 유기하였다. 아들에게 남긴 유서는 국적(國賊)을 참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고, 아버지의 죽음보다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슬퍼하라는 내용이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
- 『매천야록(梅泉野錄)』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항일순국의열사전』(오재식, 행정신문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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