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서울교당 서기, 부산교당 교감, 부산교구장 등을 역임한 원불교인.
내용
1929년 8월에 전무출신을 서원한 뒤 여러 해 동안 제사공장(製絲工場)에 다니며 학자금을 마련하여 1935년 영산학원에 입학했다. 서울지부 서기, 개성지부와 초량지부의 교무를 거쳐 서면교당 · 대구교당 · 부산교당의 교감과 부산교구장을 역임하는 등 경북지방 교화 개척의 터전을 닦았다. 1945년에는 수위단원(首位團員)에 피선되었다.
어려서부터 소태산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性理) 연마에 뛰어나서 소태산으로부터 ‘사기(邪氣) 없는 도인(道人)’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교도들로부터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소태산 · 정산(鼎山) · 대산(大山) 등 스승에게 한결같은 신심을 보였다.
1979년에 『항타원문집(恒陀圓文集)』이 간행되었다. 법위가 출가위(出家位)에 올라 종사위(宗師位) 법훈(法勳)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항타원문집(恒陀圓文集)』(항타원문집간항회, 원불교교화부, 1979)
- 『원광(圓光)』99(원불교원광사, 19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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