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중림도찰방, 사헌부감찰, 문경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나 화친 이후에는 학문에 전념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인조반정 이후에 황산도찰방으로 임명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황폐되었던 역로(驛路)를 완전히 복구하여 상을 받은 바 있고, 또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이 되어 역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 뒤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예빈시별좌·사헌부감찰을 거쳐 문경현감으로 나가서 치적을 남겼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향인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었으며, 문경인들도 이경절을 도와서 그 지역을 잘 지켰다. 그러나 삼전도화약(三田渡和約)의 소식을 전하여듣고, 고향에 돌아가서 관계에는 나오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그림과 글씨 및 가야금에 능하였다. 1651년(효종 2)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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