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1년 북방의 여진족에 대비하기 위해 한명회(韓明澮)를 순찰사로 삼고 그 종사관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병을 이유로 꺼리자, 웅천진(熊川鎭) 군졸로 복무하는 형벌을 받았다가 곧 사면되었다. 이듬 해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가 기근에 시달리는 도민을 적절히 진휼한 공로를 인정받아 1466년 형조참판·예조참판이 되었다.
1469년 함경도관찰사로 나아가 이시애(李施愛)의 난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했다. 1470년(성종 1)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향교를 적극 후원해 이 지방의 학문을 진작하는 업적을 쌓았다. 1474년 형조판서로 재임하던 중 주문사(奏聞使) 김질(金礩)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공로로 토지 30결, 노비 3구, 말 1필이 하사되었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대사헌·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경기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혼인과 빈객 접대에 필요한 어육을 황해도관찰사 이봉(李封)에게 요구한 사실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아산에 유배되었다. 이듬 해에 사면되었다.
한성부윤·병조판서를 거쳐 1483년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때 상인들을 수행하게 하여 상거래를 했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직접 관련이 없다고 극구 변명해 처벌을 면했다. 명재상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재물을 탐냈다는 평판을 면하지는 못했다. 시호는 경헌(敬憲)이다.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잡록(海東雜錄)』
- 『성호문집(星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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