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집의, 한림학사, 집현전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사직하고 수원의 광교 남탑산(光敎 南塔山)에서 살았다.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즐기는 바가 무엇인가 물으니 이고는 자신이 사는 산천을 극구 칭찬하였는데, 그 말 중에 사통팔달하여 막힌 데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1392년 조선 건국 후 삼사좌승(三司左丞) · 경기우도안렴사(京畿右道按廉使)로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태조가 화공에게 이고가 거처하는 곳을 그리게 하고 그곳을 팔달산(八達山)이라고 하였다. 세종 때에 석비를 그 마을 입구에 세워 ‘고려효자 한림학사 이고(高麗孝子翰林學士李皐)의 비’라고 하였다.
대개 조선에 벼슬하지 않은 8명의 학사를 팔학사(八學士)라고 칭하는데, 이고는 그 중 조견(趙狷) · 이집(李集)과 가까이 살면서 때때로 소를 타고 내왕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기문(大東奇聞)』
주석
-
주1
: 생년 : 『태조실록』의 이고 졸기에는 1420년에 향년 80으로 되어 있고, 이에 따르면 생년은 1341년이다. 그런데 여주이씨 족보에 수록된 "1372년 경 이윤방 처 이씨의 호적"에는 당시 나이가 35세로 나오며, 이에 따르면 생년은 1338년이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