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도관찰사, 대사간,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유생 곽경두(郭景斗)가 최석정의 유배를 상소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자, 홍우서(洪禹瑞)·이택(李澤) 등과 함께 곽경두를 옹호하다가 정주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712년 이후 정언·좌승지·황해도관찰사·수원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720년(경종 즉위년)에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대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12월 김일경(金一鏡)의 소(疏)가 있자 흉참(凶慘)하다고 지적하고, 이 때 소론이 득세하여 송시열의 도봉서원(道峰書院)을 철폐하자 이를 통탄하여 항변하였다. 신임옥사가 일어나자 경산에 정배되었다가 동래에 이배되었다.
1725년(영조 1) 노론의 득세로 풀려나와 예조참의·도승지·대사간·형조참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727년 정미환국 때 소론이 다시 기용되자 대사헌의 관작을 삭탈당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지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도곡집(陶谷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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