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 신간회 경동지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재무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목사·정치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활동사항
같은 달 상해로 망명한 이규갑은 상해임시정부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한인청년회와 대한청년단 등에 가담하여 간접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하다가 5월 이후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 청원법률심사위원회 위원, 대한적십자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국 흑룡강성의 삼일학교(三一學校)의 교사로 근무하며 애국청년혈성단(愛國靑年血誠團)을 조직하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미국남감리회 소속 목회자로 선교활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1929년 4월 신간회(新幹會) 경동지회(京東支會) 설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신간회 해소 이후에는 목회활동에 전념하였다. 1928~1931년 돈암교회·월곡교회·우이동교회·창동교회, 1933년 광희문교회, 1935년 의정부교회 등에 부임하였고, 1938년 일제에 검속되었다고도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46년 조선감리회 유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감리교회 재건운동을 선도하였다. 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고, 최고위원과 문교사회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52년 순국선열유가족 조사위원장, 1956년 충국열사기념사업회 회장, 1959년 대한기독교반공위원회 위원장, 1963년 민주공화당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 5(국가보훈처, 1988)
- 『구원의 횃불』(추영수, 중앙여중고교, 1971)
- 「일제강점기 이규갑·이애라 부부의 민족운동」(김승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5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5)
- 「이순신 후손의 항일독립운동」(김기승·천경석, 『이순신연구논총』 15,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1)
- 「한성정부수립의 전말」(이규갑, 『신동아』, 19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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