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고택은 목은 이색의 10대 손인 이산해의 손자 이구의 부인이 인조 15년(1637)에 그의 조부 묘소 근처인 이곳에 건립하고 그후 헌종 12년(1846)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전하며, 한말의 지사 이남규의 생가이기도 하다.
남향으로 건립되었고 전체 배치는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행랑체가 튼ㅁ자형을 이루면서 안채의 서측편에 一자형으로 된 큰 사랑채가 있다. 안채의 ㄷ자형 평면에서 중앙부분 3칸통칸을 넓은 대청으로 하고 대청 우측편에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이 반 칸씩의 고방을 갖고 있다.
대청의 좌측편에 안방이, 우측편에 건넌방이 위치하는 이 지방의 일반적인 평면 구조와 달라 특이하고 2칸으로 된 부엌이 안방 옆에 붙어 있다.
대청 좌측에는 1칸씩의 마루방과 건넌방이 있고 이어서 2칸의 부엌이 연결되는데, 특히 사당을 별채로 두지 않고 대청 서측 끝단 1칸 반을 우물마루로 하여 사당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안채 앞에 있는 一자형의 행랑채는 2칸의 중문을 중심으로 동측 3칸에는 헛간을 드렸고 서측 2칸은 청지기방으로 꾸몄다. 안채와 서측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되어 그 규모가 매우 크다. 대청이 2칸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면에는 4분합 띠살문 들어열개를 달았고 후면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대청 좌측에는 1칸의 작은 사랑방이, 우측에는 2칸의 큰사랑방이 있는데 대청과는 3분합 맹장지 들어열개를 각각 달아 대청으로 출입하고 있다. 그리고 큰사랑방 북측으로는 퇴칸에 반 칸을 더 내어 1칸씩의 윗방이 2칸 붙어 있고 그 옆으로 상부는 다락으로, 하부에는 1칸의 부엌이 위치하고 있다.
각간 전면에는 툇마루로 이어지고 특히 큰사랑방과 작은 사랑방 전면에는 창호로 막아서 누마루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의 구조는 덤벙주초석 위에 방형기둥을 세운 후 양봉만을 건물 내외 방향으로 끼운 간결한 민도리집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올렸다.
사랑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전면 4개소에만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나머지는 모두 덤벙주초석을 놓고 방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초각이 있는 양봉만을 끼워 놓은 굴도리집이며, 지붕틀은 5량가구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와 행랑채가 튼ㅁ자형을 이루면서 입구 쪽으로 면하면서 사랑채가 위치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배치 형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