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강(驪江). 자는 상지(尙之), 호는 안재(安齋). 아버지는 교관 이채(李埰)이며, 어머니는 옥천전씨로 감역 전극염(全克恬)의 딸이다.
학문에 힘써 경사자집(經史子集)에 박통하였으며, 이현일(李玄逸)을 찾아가 미심처를 질정(質正)하였다.
1682년(숙종 8)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94년 이현일의 천거로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고, 1696년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 1697년 내섬시봉사(內贍寺奉事), 1699년 사헌부감찰을 거쳐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1701년 파직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오직 학문과 후진 교육에 힘썼다.
예학에 밝아 효종의 1년 복제가 잘못되었다는 상소를 올린 바 있으며, 권두경(權斗經)·홍집(洪楫)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안재문집(安齋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