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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보화당전무이사, 산업부장, 총부 산업부장 등을 역임한 교무.
이칭
  • 도산(道山)
  • 이칭이형천(李亨天)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2년(고종 29)
  • 출생지전라남도 영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홍철 (원광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보화당전무이사, 산업부장, 총부 산업부장 등을 역임한 교무.

내용

본명은 형천(亨天), 법호는 도산(道山). 전라남도 영광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 박중빈(朴重彬)의 제자가 된 뒤, 당시 원불교에서 추진하던 농촌운동을 신흥마을에서 야학을 실시하여 문맹퇴치에 힘써고 교향 신천리에 묘량 수신조합(守信組合)을 설립하여 신흥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했다.

1923년에 출가하여 원불교 전무출신이 되면서 중앙총부 서무부장, 농업·상조부장, 공익부장, 육영부장, 보화당전무이사, 산업부장 등으로 봉직하면서 초기의 교단창립과정에서 산업분야를 맡아 큰 업적과 공을 세웠다.

1934년에 창설된 원불교의 대표적인 산업기관인 보화당(普化堂) 한약방은 그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며, 산업부장 재임시 삼례과원(현 수계농원)을 만들었다.

한편, 수행에도 크게 힘써 이사병행(理事並行)의 표준을 보였다. 1926년에 수위단원(首位團員)에 피선되었고, 1941년 총부 산업부장으로 재직중 죽었다. 대봉도(大奉道)의 법훈(法勳)을 받았다.

참고문헌

  • - 『대종경(大宗經)』(정화사편, 원불교중앙총부, 1961)

  • - 『회보(會報)』(불법연구회, 193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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