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영천군수, 호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장(而壯)
  • 자암(紫巖)
  • 시호충간(忠簡)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
  • 본관영천(永川)
  • 사망 연도1649년(인조 2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영천군수|호조참의|형조참판
  • 출생 연도1573년(선조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자암문집 / 자건주환후진정소 미디어 정보

자암문집 / 자건주환후진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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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영천군수, 호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장(而壯), 호는 자암(紫巖). 이세헌(李世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여해(李汝諧)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선무랑 신권(申權)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검열·정언·병조좌랑을 거쳐, 1603년 암행어사로 평안도에 가서 수령의 비행과 민정을 살폈으며, 1608년 영천군수로 나갔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에서 군원을 요청하자, 원수 강홍립(姜弘立)의 막하로 출전하여 부차(富車)싸움에서 패하여 청군의 포로가 되었다.

17개월 동안 청나라의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1620년에 석방되어 의주에 이르렀을 때 사원을 가진 박엽(朴燁)의 무고를 받아, 4년간 평안도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괄(李适)의 난 때와 정묘호란 때 왕을 호종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영남호소사(嶺南號召使) 장현광의 종사관이 되어 출전하였다.

난이 끝난 뒤 군자감정으로 통정계(通政階)에 올랐고, 이어 동래부사가 되어 번거로운 폐단을 근절하였다. 그 뒤 판결사·호조참의·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가, 1645년에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저서로는 『건주견문록(建州見聞錄)』·『자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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