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영천군수, 호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개월 동안 청나라의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1620년에 석방되어 의주에 이르렀을 때 사원을 가진 박엽(朴燁)의 무고를 받아, 4년간 평안도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괄(李适)의 난 때와 정묘호란 때 왕을 호종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영남호소사(嶺南號召使) 장현광의 종사관이 되어 출전하였다.
난이 끝난 뒤 군자감정으로 통정계(通政階)에 올랐고, 이어 동래부사가 되어 번거로운 폐단을 근절하였다. 그 뒤 판결사·호조참의·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가, 1645년에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저서로는 『건주견문록(建州見聞錄)』·『자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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