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승(子乘), 호는 고재(顧齋).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完州) 출생. 교리(校理) 이봉덕(李鳳德)의 아들이며,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1892년(고종 29)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실의에 빠지기도 하였다.
1902년(고종 28) 도백(道伯) 이성열(李聖烈)의 천거로 재랑(齋郞)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병은은 항일정신이 투철하여, 한말의 비사(秘史)를 엮은 조희제(趙熙濟)의 『염제야록(念齋野錄)』에 발문을 써준 것이 말성이 되어 조희제와 함께 임실경찰서에 구속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병은은 고향에 있던 남안재(南安齋)를 전주로 옮기고 후진을 양성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시켰으며, 1949년 향교위패매안(鄕校位牌埋安) 사건이 일어나자 정부에 건의하여, 선비로서 선현을 위해 죽음을 절의로 삼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전주향교의 위패를 지키기 위해 강경한 투쟁을 하였다.
학술로는 「일리함만수(一理涵萬殊)」와 「심기설(心氣說)」 등 많은 잡저(雜著)를 지어 우주의 천태만상이 결국은 한 이치로 돌아감을 전제하여 태극(太極)의 본체가 하나이듯이 인성(人性)의 본체도 하나로서 모든 것이 성에서 근본되었음을 강조하였고, 심종설(心宗說)을 반박하여 심(心)과 기(氣) 내지 심의 직분과 기의 직분이 구분되어 있음을 밝혔다.
또한 전우의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을 학파의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나 성리의 근원에 진리를 추구하면서 계승 발전시켰다. 전주의 남양사(南陽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고재집(顧齋集)』 12권 6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