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 성리학자 이진(李軫)의 아우이다.
군위에 살면서 유성룡(柳成龍)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아 경전과 성리(性理)에 밝았다.
1580년(선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인동을 임시로 맡아 다스리면서 모속관(募粟官)을 겸하여 군량미 조달에 공이 많았다.
뒤에 김응남(金應南)·정곤수(鄭崑壽) 등의 천거로 당진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인동 주민들의 요청에 의하여 인동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선정을 베풀어 크게 명망이 있었다.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천생산성(天生山城)을 쌓을 때, 그 역사(役事)를 책임맡아 수개월 만에 준공을 보았으며, 1604년 거창현감으로 전직되었으나 노쇠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