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종성부사, 나주목사, 의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휘백(輝伯)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임옥사
  • 본관용인(龍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종성부사|나주목사|의주부윤
  • 출생 연도1688년(숙종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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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종성부사, 나주목사, 의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휘백(輝伯). 보은현감 이하악(李河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만(李世萬)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이의저(李宜著)이며, 어머니는 정정양(鄭正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지평·정언·교리·집의 등을 거쳐, 대사헌·종성부사(鐘城府使)·나주목사(羅州牧使)·승지·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723년(경종 3)에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의 세제책봉(世弟冊封)을 둘러싼 신임옥사(辛壬獄事)가 일어나자, 지평이었던 이보욱은 이만성(李晩成) 등이 노론 4대신의 흉역(凶逆)에 참여하였다 하여 국문하기를 청하였다.

또 신임옥을 고변한 목호룡(睦虎龍)만이 단신으로 녹훈(錄勳)되자, 국조 300년에 고변자가 단독으로 원훈(元勳: 나라를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움.)된 예는 없다 하여 마땅히 옥사를 다스린 여러 신하들이 함께 녹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 옥사를 담당한 대신들이 모두 소론이었던 만큼, 영조 즉위로 노론이 득세하자 김일경(金一鏡)·목호룡의 여당으로 몰려 탄핵을 받고 유배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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