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산현감, 송화현감,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집상 중에 시묘에서 차오르는 습기 때문에 병을 얻어 사지가 마비되어 벼슬에 나서지 않기로 마음 먹었으나, 결국 다시 복직하여 1735년(영조 11) 충청도사가 되고 이듬해 사헌부장령에 임명었으며, 1737년 결성현령이 되어 백성을 잘 다스린 결과 함행어사의 포상에 대한 장계가 있었다.
1740년 정언(正言)을 거쳐 사성이 되고 이어서 헌납을 지냈다. 1752년 집의가 되었다. 1755년 장릉(章陵)의 참봉이었을 때 손자가 화승(火繩)을 가지고 놀다가 장릉에 불을 낸 죄로 이봉령은 강진현에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듬해 풀려 사간으로 복직되었다. 병이 점점 심해지자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갔는데, 그 뒤 여러 번 소명이 있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756년(영조 32) 향년 67세로 하직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호문집(星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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