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중추원부사, 동지중추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공소(恭昭)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성(陽城, 지금의 경기도 안성)
  • 사망 연도1446년(세종 2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황해도수군첨절제사|경상좌도처치사|공조참판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영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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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중추원부사, 동지중추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개성유후 이옥(李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5년(태종 5) 무과에 급제해 사직을 지내고, 1408년 양녕대군(讓寧大君)이 명나라에 조하(朝賀)하려 갈 때 수행해 양녕대군의 난잡한 행동을 충고해 미움을 받았다.

1418년 태종의 셋째아들인 충녕대군(忠寧大君: 뒤의 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자 태종의 명으로 충녕대군을 보좌하였다. 이어 상호군에 승진했다가 파직되어 평산에 내려갔다. 1419년(세종 1) 왜구가 비인현에 쳐들어와 병선을 불사르는 등 만행을 저지르자 황해도수군첨절제사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조전절제사로 황해도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중 왜구가 식량을 요구하면서 교묘하게 싸움을 하지 않는 술책을 써오자, 이들을 강력하게 물리치지 않은 죄로 변방에 충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426년 상호군(上護軍)으로 명나라에 바칠 해청(海靑: 매)을 잡으라는 명을 받았다.

이듬해 상호군으로 진응사(進鷹使)가 되어 명나라로 가다가 요동에 이르러 매가 죽자, 죽은 매를 가지고 북경의 대궐에 가서 사죄하니, 명나라 황제가 가상히 여겨 장군모(將軍帽)를 하사했다 한다. 1429년 좌군첨총제(左軍僉摠制)·경상좌도처치사를 지내고 공조참판이 되었다.

1432년 판의금부사, 1434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이듬 해 동지중추부사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38년 다시 성절(聖節)을 하례하고 돌아오라는 명을 받았다.

같은 해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왜관을 옮길 것, 진관 설치를 조정할 것, 병선을 증강할 것, 병기의 검열을 철저히 할 것 등의 내용을 올렸다.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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