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신대한동맹회 총무, 대한민국임시정부 검사원 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혜춘(惠春)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95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4년(고종 21)
  • 출생지충청남도 홍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신대한동맹회 총무, 대한민국임시정부 검사원 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혜춘(惠春). 충청남도 홍성 출생. 1914년 감리교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다음해에 감리교의 목사가 되었다.

1919년 3월 한국독립운동본부의 지령으로 중국 북경(北京)에 파견되어 박정래(朴正來)·조두진(趙斗珍)·유장연(劉璋淵)·전재홍(田在弘)·유중한(柳重韓)·연병주(延秉柱)·최훈식(崔勳植) 등과 더불어 신대한동맹회(新大韓同盟會)를 조직, 회장에 박정래를 추대하고 자신은 총무를 맡아보았다.

1920년초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표자격으로 중국 각 성(省)을 순방하면서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지원을 요청하여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그밖의 다른 나라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도 활동하였다.

그 뒤 중일전쟁의 확대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저우[杭州]·충칭[重慶]으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을 펼 때, 의정원의원·검사원원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제4·5차 개헌에도 간여하였다. 1945년 화중구(華中區) 한교선무단장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駐華)대표가 되었으며, 다음해 대만한교협회 이사장으로 한국동포의 생명과 재산, 안전귀국 등의 업무를 처리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었다.

상훈 및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유공자공훈록』5(국가보훈처, 1988)

  •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 『독립운동사』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 『한국독립운동사』3(국사편찬위원회, 1967)

  •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第二課編, 東文社書店,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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