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국

  • 역사
  • 지명
  • 초기국가
신라 초기에 복속된 주변에 있었던 소국.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용진 (경북대학교,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청도 이서국 궁성지 전경 미디어 정보

청도 이서국 궁성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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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초기에 복속된 주변에 있었던 소국.

내용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다른 성읍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서국에 대해서도 문헌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26 청도군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신라 제3대왕인 유리왕 때 멸망하고 그 뒤 솔이산(率伊山)·경산(驚山)·오도산(烏刀山)에 있는 세 성과 합쳐 대성군(大城郡)이 되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 권1 이서국조에 보면, 신라 제3대왕인 유리왕 14년(37)에 이서 사람이 금성(金城)을 쳤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권2에는 유례이사금 14년(297)에 이서국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는 대병으로 막았으나 이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 때 홀연히 이병(異兵)이 나타나 신라병과 연합하여 이를 물리치게 되었는데, 이 이병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왕인 미추왕의 왕릉인 죽현릉(竹現陵)에 죽엽(竹葉)이 쌓인 것을 보고, 선왕이 음병으로 신라를 도운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 권1 미추왕 죽엽군조(味鄒王竹葉軍條)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본 신라 제3대 유리왕 14년과 제14대 유례왕 14년의 기사내용이 서로 비슷하면서 시대를 달리한 것은 기록 차이로 생각된다. 이처럼 이서국의 멸망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14대 유례왕 때까지 성읍국가로 존속해 오다가 신라에 멸망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이서국고(伊西國考)」(이형우, 『한국고대사연구』 1,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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