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첨지중추부사, 좌승지,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사사(賜死)된 이극균(李克均)의 조카라 하여 남해에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사면과 함께 예조참의에 서용되고, 곧 병조참지에 체직되었다.
1507년 노모 봉양과 관련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에 파견된 뒤 이듬해 판결사(判決事)로 중앙으로 돌아 왔다. 이후 1523년까지 형조참의, 병조참의, 전주부윤, 예조참의, 해주목사, 돈령부도정, 판결사, 전라도관찰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두루 역임하였다.
1524년(중종 19) 좌승지에 제수되고, 곧 도승지에 올랐다가 출납을 소홀히 한 일로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이듬해 호조참의에 서용되고, 다음해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1528년 이조참의를 역임하고 졸하였다. 청렴강개한 성품과 효행으로 인망이 높았다. 묘는 경기도 성남시 하대원동(下大院洞)에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광주이씨대동보(廣州李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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