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

강화지도
강화지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인천광역시 북서부 한강의 입구 황해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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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천광역시 북서부 한강의 입구 황해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경기도 김포시, 남쪽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쪽은 경기도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126°33′, 북위 37°31′∼37°48′에 위치한다. 면적은 411.33㎢이고 인구는 6만 766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186개 행정리(9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이다.

자연환경

주 섬인 강화도를 비롯해 석모도 · 교동도 등 큰 섬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화도는 한강 · 임진강 · 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하며, 세 개의 강이 합류한 물줄기 중 한 갈래는 강화도 북쪽을 지나 황해로 흘러들고, 북쪽 대안에는 개풍군과 연백군이 위치해 있다. 또 한 줄기는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를 남류해 염하(鹽河)를 이룬다.

이 염하는 과거 삼남지방의 세곡을 수운을 통해 서울로 운반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밀물과 썰물 때 조류가 대단히 빨라 선박 통행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최고봉인 마니산(摩尼山, 469m)을 비롯해 혈구산(穴口山, 466m) · 진강산(鎭江山, 443m) · 고려산(高麗山, 436m) 등 300∼4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들이 산재해 있다.

이 산지 사이로는 황경내 · 천하골내 · 용목내 등 소하천이 통과,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에는 해안의 충적지가 형성되어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경기만의 해안은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며, 해저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갯벌의 발달이 탁월하다.

강화 지역은 위의 세 하천의 하구에 위치해 있어 이들 하천이 운반하는 막대한 양의 토사가 강화수역에 퇴적되어 큰 섬들 주위에 넒은 갯벌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갯벌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간척되어 인공 평야가 되었다.

이러한 간척에 의해 복잡했던 섬들은 연륙되어 석모도와 같이 큰 섬으로 변하였다.

연평균기온은 11.2℃ 내외로 해양에 근접한 관계로 연교차는 크지 않고 대체로 온난한 편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321㎜이다. 풍부한 강수량과 온난한 기후로 인해 중부지방인데도 특이하게 탕나무 · 동백나무 · 초피나무 등 난대성 식물이 자생한다.

역사

하점면 장정리, 화도면 사기리와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수습되었고, 군 내의 여러 곳에서 신석기 유물이 채집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점면 부근리와 신삼리 등지에 분포해 있는 고인돌,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마니산의 참성단(塹城壇), 길상면에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해 쌓게 했다고 전하는 삼랑성(三郎城)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이후에도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이곳에 혈구군을 설치했으나 757년(경덕왕 16) 신라가 이곳을 점령해 해구군이라 개칭했고, 790년(원성왕 6)혈구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940년(태조 23) 강화로 개칭하고 현을 두었는데, 이 때 비로소 강화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몽고의 제2차 침입 직전인 1232년(고종 19) 고려는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강도(江都)라 칭하고 몽고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다가 1270년(원종 11)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고려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주조, 팔만대장경의 조판, 상감청자의 제작 등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개경환도가 이루어지자 이에 반대하던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고려 조정과 몽고에 항쟁하다가 진도로 남하하였다. 이 때 삼별초는 1,000여 척의 배에 각종 재물과 인질로 삼은 고관의 가족들을 싣고 진도로 남하해 항쟁을 계속하였다.

고려 말기에는 왜구가 자주 침입해 피해가 컸으며, 충렬왕 때에는 잠시 인주(仁州 : 현재의 인천)에 병합되었다가 1377년(우왕 3) 강화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을 두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일시 강화로 피난했다가 환도했는데, 이 때 부윤을 다시 유수로 승격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김상용(金尙容) 등에게 명해 하여금 종묘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 봉림대군 · 인평대군 등과 함께 강화로 피난하게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는 백관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싸우다가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남한산성을 열어서 청나라와 강화하였다.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뒤의 효종)은 청나라에서 돌아와 왕위에 오르자,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북벌계획을 추진할 때 그 일환으로 강화도에 진보를 설치하는 등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 작업은 숙종 때까지 이어져서 강화도에는 내성 · 외성 ·12진보 ·53돈대 등이 축조, 설치되어 이중 삼중의 요새화가 이루어졌다. 또 1678년(숙종 4) 강화부윤이 진무사를 겸직하도록 하고 강화만 일대를 방어하는 오영(五營)을 통솔하게 하였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상륙, 강화성을 함락하고 약 1개월 동안 머무르다가 정족산성전투(鼎足山城戰鬪)에서 양헌수(梁憲洙)에게 패퇴하자 강화도에서 철수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강화성이 함락될 때 전 병조판서 이시원(李是遠) 형제가 독약을 마시고 순절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던 미국 함대가 광성보(廣城堡) · 덕진진(德津鎭)과 대안인 통진 · 덕포진(德浦鎭) 등의 포격을 받고 인천 방면으로 퇴각했다가 다시 북상해 초지진(草芝鎭)을 점령하였다. 초지진을 점령한 미국 해병대는 육로로 북상해 덕진진과 광성보를 함락시켰다.

광성보전투에서는 어재연(魚在淵) 이하 모든 장병이 끝까지 싸우다가 중상자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였다. 이 두 양요를 거친 뒤 1874년에 강화도 동쪽해안에 포대를 설치해 외침에 대비했으나, 이듬해에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이 일어나 초지진과 포대가 일본군함의 포격을 받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1876년에는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는 일본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1896년에 강화부로 강등되었고, 1906년에는 다시 강화군으로 강등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교동군(喬桐郡)이 편입되었다.

1950년에 6·25전쟁으로 북한군이 침입하자 군민들이 특공대를 조직해 그들을 격퇴시켰는데, 강화읍 입구에는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전사한 19인의 영령을 추모하는 ‘강화특공대의적비’가 세워져 있다. 1962년 10월 1일 볼음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강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하점면 양오리가 송해면에 편입되었으며, 1987년 6월 25일에 강화읍 신문리 일부를 관청리에, 불은면 삼동암리 일부를 삼성리에, 불은면 신현리 일부를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또 1991년 8월 8일에는 화도면 장화리 일부를 내리에 편입시켰다.

1993년 9월 13일에는 불은면 덕성리 일부를 길상면 길직리에, 길상면 장흥리 일부와 길직리 일부를 불은면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이듬해에는 강화읍 대산리 일부를 송해면 신당리에, 송해면 신당리 일부를 강화읍 대산리에 편입시켰다. 1995년 3월 1일 군 전체가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1월 12일에는 송해면 양오리의 일부가 하점면 장정리로, 같은 해 4월 10일에는 하점면 망월리의 일부가 내가면 오상리에, 내가면 오상리와 구하리가 하점면 망월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오늘날 강화도에서는 강화문화제, 고인돌축제, 참성단 축제 등을 마련하여 진행되고 있다. 2005년 12월 말 기준 562개소의 문화재(현, 국가유산) 내지 사적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83개소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인천가톨릭대학교가 설립되었고,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가천의과학대학교 등이 개교되어 교육도시로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유물 · 유적

상고시대의 참성단을 비롯해 고종 때 축조된 포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하점면 부근리 에는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1964년 지정) ·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강화읍의 강화 대산리 지석묘(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가 있고 내가면에는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양도면 에는 강화 인산리 석실분(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강화 능내리 석실분(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이 있다.

산성으로는 교동면 읍내리에 교동읍성(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불온면 오두리에 강화전성(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길상면 온수리에 강화 삼랑성(사적, 1964년 지정), 강화읍 국화리에 강화산성(사적, 1964년 지정) 등이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강화읍 갑곶리에 강화 갑곶돈(사적, 1984년 지정), 길상면 초지리에 강화 초지진(사적, 1971년 지정), 불은면 덕성리에 강화 덕진진(사적, 1971년 지정) · 강화 광성보(사적, 1971년 지정)가 있다.

이외에도 길상면 선두리에 후애돈대, 화도면 장화리에 장곶돈대(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내리에 선수돈대, 내가면 황청리에 계룡돈대(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 삼암돈대 등이 있다. 또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에는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하점면 망월리에는 망월돈대가 있다. 후애돈대는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선수돈대는 1995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망월돈대는 1995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불교 유산으로는 하점면 부근리에 강화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1989년 지정), 장정리에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78년 지정)이 있고, 길상면 온수리의 전등사 경내에는 강화 전등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 강화 전등사 약사전(보물, 1963년 지정) · 전등사 대조루(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 전등사 철종(보물, 1963년 지정), 강화읍 관청리에는 사인비구 제작 동종(보물, 2000년 지정), 삼산면 매음리의 보문사 경내에는 보문사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화도면 사기리의 정수사에는 강화 정수사 법당(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사지로는 선원면 지산리에 강화 선원사지(사적, 1977년 지정), 하점면 이강리에 원층사지(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강화읍 관청리에 강화향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 강화 유수부 동헌(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 강화 유수부 이방청(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등이 있고 교동면 읍내리에 교동향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55년 지정)가 있으며 선원면 선행리에는 충렬사(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가 있다.

강화읍 국화리 에 강화 홍릉(사적, 1971년 지정), 양도면 길정리에 강화 석릉(사적, 1992년 지정) · 강화 곤릉(사적, 1992년 지정), 능내리에 강화 가릉(사적, 1992년 지정), 불은면 두운리에 허유전 묘(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양도면 건평리에 이건창묘(李建昌墓), 길상면 길직리에 이규보 묘(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가 있다.

그리고 화도면 사기리에 이건창 생가(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강화읍 관청리에 김상용 순절비(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또 길상면 온수리에 양헌수 승전비(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강화읍 국화리 에 보만정(保晩亭), 월곶리에 연미정(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하점면 신봉리에 봉천대(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가 있다. 강화읍 관청리에 강화 고려궁지(사적, 1964년 지정) · 용흥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문산리에 천제암(궁)지(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화도면 흥왕리에 강화 참성단(사적, 1964년 지정)과 참성단 중수비(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강화읍 관청리에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사적, 2001년 지정)이 있다. 이외에 강화읍 신문리에 강화 석수문(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강화읍에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화도면에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강화 서도면의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삼산면 음리의 보문사 향나무(인천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와 보문사맷돌(인천광역시 민속자료, 1995년 지정)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1127년(인종 5)에 창건되었고 여러 차례 중수해 이건된 강화읍 관청리의 강화향교와 같은 해에 창건된 교동면 읍내리의 교동향교가 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강화진위대 참령을 지낸 이동휘(李東輝)가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신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함에 따라 각지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에 1871년 중성학교(中成學校), 1872년 보창학교(普昌學校), 1896년 광명학교(光明學校) 등이 세워졌다. 1897년에 「보통학교령」이 공포되자 이듬해 강화보통학교(지금의 강화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00년 대동학교(大東學校), 1907년 영생학교(永生學校), 1908년 집일학교(集一學校) 등이 세워졌다.

중등교육 기관으로는 강화중학교가 광복 직전인 1945년 5월 20일 설립되었다. 그 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등학교도 많이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으며, 인천가톨릭대학교,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있다.

문화사업으로는 1946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강화군수와 지방유지들을 중심으로 강화문화관이 건립되었다. 여기에는 내외서적 1만 6000여 권과 유물 수천 점이 소장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소장품 일체를 도난당한 뒤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그 뒤 1962년 4월 1일 새로이 강화문화원이 창설되어 각종 문화 · 예술 행사를 주관하면서 지역문화의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1976년에는 1,000여 면에 달하는 『강화사(江華史)』를 발간하였다.

민속

중요한 민속놀이로 시선(柴船)뱃놀이와 용두레질놀이를 들 수 있다. 시선은 운반선을 겸한 상선으로서 어장에서 잡은 고기나 땔감을 운반하던 배였고, 강화도를 중심으로 연해어장에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장까지 운항했고, 한선(韓船)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부터 있었다는 시선은 오늘날에는 시대적인 추이에 따라 젓잡이배나 기타 운반배 등으로 변형되었다. 이 배는 길이 15m, 너비 3m 이상이고, 배에는 총 지휘자를 비롯해 영좌^선원 등 약 20명이 승선하며, 출항하기 전에는 동네사람들과 함께 무사와 풍어를 비는 당굿을 한다.

승선을 한 뒤에는 노래와 함께 닻을 올리고, 돛을 달면서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 배와 만나고 그물 뽑는 노래를 한다. 다시 고기를 넘겨받으며 「바듸소리」를 부른다. 바듸란 고기를 옮겨담을 때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으로, 작업과정에 도구의 이름을 앞에 붙인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끝으로 시선은 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메기는 소리의 독창과 받는 소리의 제창이 어우러지며 배는 마포의 객주집에 이르게 된다. 포구에 배가 닿기 직전에 시선뱃노래와 함께 배 위에서는 풍어를 알리는 신호로 꽹과리 · 호적 · 징 · 북이 등장해 풍물놀이로 흥을 돋운다.

선상 배치기(뱃노래)와 함께 배가 육지에 닿으면 선주와 그 부인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술동이를 이고 춤을 추며 마중나온다. 이 때 봉기(奉旗)를 앞세우고 행진을 한 선원들이 봉기를 선주집에 세우고 풍장놀이를 하고 춤을 추면 시선뱃놀이의 절정을 이룬다.

용두레질놀이는 노래 부르면서 농경지에 물을 퍼붓는 작업을 재연한 놀이이다. 용두레란 깊은 곳에 저수된 물을 천수답으로 퍼올리는 재래식 양수시설이다. 용두레는 지름 40㎝, 길이 80㎝의 통나무를 길게 켜서 속을 파내어 삼발이 대에 매달아놓고 물을 푸는 것이다. 물을 푸기가 힘들어 농요를 부르며 작업의 능률을 올린다.

“물줄은 하난데

두레는 열두래

……………

어저께까지 삼천두레라

(후렴)이거 두레 물 올라가는가.”

「용두레질노래」

내가면 외포리 정포마을의 상산에서 행해지는 곶창당제는 3년마다 이루어지는데, 유래가 오래된 것을 추정된다. 음력 2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산에 있는 당집에서 3∼5일에 걸쳐 당제가 이루어지는데, 먼저 남녀 각각 세 사람씩 제관이 되어 산에서 떡시루를 놓고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바치는 등 제물과 절차가 엄격한 관례로 규제되고 있다.

제사가 끝나면 수(首)만신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만신들이 모여 산신 · 제석 · 임경업장군신 등 열두거리굿을 통해 풍어를 비롯한 농사의 풍년을 빌고, 가가호호의 소지(燒紙)를 올려준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이 쌀 한 되씩 내며, 선주들이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밖에 갑곶돈대가 있는 진해산(鎭海山) 당집, 또한 내가면 황청리에서도 매년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설화 · 민요

대표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설화는 손돌목 이야기이다. 강화로 피난 오는 왕족을 실은 손돌이라는 사공이 위험한 곳에 진입하자, 왕족은 손돌의 행위를 의심해 그의 목을 베고 위험을 벗어났다. 그 뒤 이 곳을 손돌목이라 불렀으며, 해마다 그 날이 되면 갑자기 추위와 바람이 닥쳐오는데, 그것을 손돌이추위 ·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또한 ‘마니산전설’은 마니산 · 혈구산 · 진강산 · 고려산 · 능주산 다섯 형제가 중국에서 떠내려 왔는데, 마니산은 맏이이므로 가장 높고, 지금도 꼭대기에는 그 때 쌓은 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충렬사유래담’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와 싸우다 역부족으로 강화성이 함락되자 원임대신으로서 왕족을 모시고 강화로 왔던 김상용이 화약고에서 자폭했는데, 그 때 신발 한 짝이 떨어진 곳이 지금의 충렬사가 위치한 곳이라고 전해진데서 유래한다.

선두포 둑에 얽힌 이야기는, 둑을 쌓는 공사가 몇 년이 걸려도 완공되지 않자, 어떤 중이 나타나서 “사람을 하나 바다에 집어넣으면 쉽게 완성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인부가 그 중을 떠밀어 넣어서 둑을 완성시켰다는 내용이다.

이 지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벌대총 이야기’는, 조선시대에 효종이 사랑하는 명마 벌대총이 죽자, 이를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양천(陽川)의 사또가 “벌대총이 누운 지가 사흘이요, 눈 감은 지가 사흘이요, 먹지 않은 지가 사흘입니다.”라는 보고를 해 위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양천 원 죽은 말 지키듯 한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 밖에 병자호란 때 왕자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잡힌 곳이어서 ‘부군리(扶君里)’라는 지명, 귀양을 가면 머리가 희도록 못 돌아간다는 ‘모로도전설(毛老島傳說)’, 동네 부녀자들의 풍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문무정전설(文武井傳說)’, 여자에게 속은 목수가 화풀이로 만들어 추녀에 붙였다는 ‘전등사나녀상의 유래담’ 등이 이 고장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고장에는 노동요를 중심으로 의식요 · 동요 및 비기능요인 타령요류 등이 골고루 구전되고 있다. 노동요는 이 고장의 역사적 · 지리적 배경 때문에 성을 쌓을 때 부르는 축성요와 어업 노동요가 중심이 된다.

고려 때부터 군사상의 요지였으므로 여러 차례 성이 축조되었는데, 이 때 동원된 인부들에 의해 불리다가 일반화된 것이 축성요라 할 수 있다. 가락이 4·4조의 연첩으로 단조롭고 힘을 모아야 하는 노동요의 형식과 기능을 갖추고 있으나 지금은 민속놀이의 일부로 불리고 있다.

성을 쌓을 때 부른 노래 중 「터 다지는 노래」는 다음과 같은데, 그 특징이 잘 나타난다. “어이어라 성터로다/(후렴)/어이어라 성터로다/천지는 동남이요/(후렴)/국호는 대한민국/(후렴)/경기우도 삼십칠관/(후렴)/강화군이 닥쳤구나 (후렴)……”

어업 노동요는 출어에서부터 각 작업 과정마다 노래가 있는데, 가락은 단조롭고 느리면서도 힘차나 애조를 띠고 있다. 특히 유명한 것이 시선뱃노래이다. 시선은 고기를 잡기도 하지만 주로 잡은 고기를 운반하는 배이다. 시선의 근거지가 이 고장이고 목적지가 서울 마포였으므로 「한강 시선뱃노래」라고도 한다. 강을 거슬러 가면서 노를 젓는 단순한 작업 때 부른 것이므로 같은 노래를 자주 불러 노래나 창자가 모두 세련되었다.

교환창임에도 불구하고 메기는 노래나 받는 노래가 모두 다양한 리듬으로 되어 있는데, 메기는 노래의 사설이 조금 더 길 뿐이다. 메기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달은 밝고 명랑헌데/에야져차/고향생각이 절로 나네/에야져차/어허이야 어허허 이얘/어거덩차어그드르나어거야/……”

비기능요 중 이 지방 특유의 노래는 「강화도 큰애기」이다. 이 노래는 강화의 모든 면을 일일이 돌면서 특산물 · 자연환경 · 명소 등을 후렴에 나열해 향토적인 특성을 잘 나타낸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길상면 큰애기 절놀이로 나간다/올타 그렇다 거짓말이 아니다 전등사가 유명해서 그렇지/……하점면 큰애기 화문석 짜기로 나간다/올타 그렇다 거짓말이 아니다 능오리 화문석이 유명해서 그렇지/……”

이 밖에도 후렴이 흥겹고 빠른 가락에 구절 뒤를 길게 뽑는 「강화도 어랑타령」도 있다. 의식요로는 고사 지낼 때 부르는 노래와 상여소리 등이 있고, 동요로는 동물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다.

산업 · 교통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지역별로 30% 이상의 인구가 집중해 있는 강화읍을 제외한 기타 면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인구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내가면 · 하점면 · 교동면 · 삼산면 등이 높은 감소를 보이고 있다.

전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 지역이다. 내가면에 고려 저수지, 길상면에 온수리 저수지 등이 있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간척에 의해 확장된 농경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화도면 일대의 가릉평 · 선두평, 내가면 · 하점면 일대의 망월평, 삼산면 일대의 송가평, 교동면 일대의 염주평 및 영산평 등에서는 벼농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벼농사 발달에 필수적인 농업용수는 낮은 땅들이 모두 방조제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소하천의 물이 최대한 활용되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어 쌀이 생산되고 있다. 기타 주요 농작물로 맥류 · 서류 · 두류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수도권과의 근접성에 의해 무 · 배추 같은 원예작물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강화순무’라는 무는 인기가 있다.

임야지역에서는 도토리 · 밤 · 버섯 · 호두 등도 생산되고 있다. 경지면적은 군 전체 면적의 40%가 넘는 165.17㎢이며, 이 중 논이 126.73㎢를 차지해 논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강화의 특산물로서 가장 이름이 높은 작물은 인삼이다.

인삼 재배에 적당한 화강암 풍화토가 널리 분포되어 있고, 기후 조건도 적당한 강화 지역에는 20세기 초부터 개성 지역으로부터 인삼 재배기술이 전파되어, 1970년대 중반에는 전국 수요의 절반이상의 인삼이 강화 지역에서 공급되는 등 화문석과 함께 강화 경제의 핵심을 차지해 왔다. 현재는 재배면적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농가소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화문석은 고려시대 이래로 강화 지역의 우수한 왕골을 원료로 생산되었던 또 하나의 특산물로서, 품질이 우수해 해외로 많이 수출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입제품에 밀려 명맥만 이어질 정도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강화만 연안 일대는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어 새우 · 조기 · 가무락 · 숭어 · 도미 등 수산업이 발달했으나, 내륙에서 발달한 농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총 인구의 6%만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내가면 외포리는 수산업의 중심 어항이며, 백합 · 굴 · 김 등의 양식업도 일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차 산업의 경우, 한때 견직과 면직물을 생산하는 섬유공업이 활발했으나, 지금은 전체적으로 발달이 매우 미약해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강화도는 물살이 빠른 염하를 사이에 두고 육지와 분리되어 있어 과거에는 주로 수운을 통해 서울 지역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현재 육지 및 서울로 연결되는 유일한 도로망인 4차선 48번 국도는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통해 강화읍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에 개통된 강화대교는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를 연결하는 길이 694m의 다리이다. 최근에는 수도권에 인접한 역사, 문화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교통 수요가 폭증해 만성적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화대교의 개통으로 정기버스노선이 대폭 증편되어 1982년 이후 서울방면은 150여편, 인천방면은 100여 편, 수원방면은 80여 편 등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1997년 8월 30일강화 · 서울 간 4차선 도로 확장, 너비 19.5m의 4차선 신강화대교 개통, 서울 및 인천과 서해안 고속도로로 연계되는 서울 88제방도로 및 외곽순환도로와의 연결은 강화 발전에 가속도를 붙여주고 있다. 또한 2002년 8월강화 초지대교가 개통되었으며 해안순환도로도 2009년에 완공되었다. 내가면 외포리는 수산업의 중심지이면서 아울러 석모도 · 교동도 등 인접 섬으로의 연결되는 여객 해운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관광

한반도의 중앙, 경기만에 위치하고, 개성과 서울로 들어가는 해상교통의 입구에 위치한 관계로 예로부터 역사적 사건의 중심 무대가 되어왔으며, 이와 관련된 유물, 유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고조선시대에 춘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 제천단이 있고 이, 전국체전을 비롯한 체육행사 때마다 이곳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대회장으로 봉송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사찰과 항몽 유적지, 선사시대 유물 등 민족의 역사를 반영해주는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역사 문화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불교 유적도 삼국시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길상면 전등사의 경우 대웅전 · 약사전 · 범종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삼산면 보문사의 경우 석실과 마애석불좌상 등이 유명하고, 하점면의 오층석탑 및 석조여래입상, 화도면의 정수사법당, 선원면의 강화선원사지 등도 널리 알려진 불교 유적들이다.

강화는 고려조의 천도지였기 때문에 관련 유적들도 많이 남아 있다. 강화읍의 고려궁지, 강화산성 및 강화산성의 서문인 담화루(膽華樓), 남문인 안파루(晏波樓) 등이 유명하며, 고려 왕릉으로는 석릉 · 홍릉 · 곤릉 · 가릉 등이 있다.

이후 병자호란 때에는 다시 왕실이 강화로 천도하게 되어 현 강화읍을 중심으로 고려 말과 마찬가지로 임시수도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격변기를 제외한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와 교동도가 각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면서 관련 유적들을 남겼다.

강화읍 의 충렬사와 강화향교, 교동면의 교동향교가 대표적인 유교유적들이다. 구한말 일본 및 서구열강의 침입을 막는 최전방 구실을 했던 강화섬에는 염하의 남쪽 길목을 따라 길상면의 초지진, 불은면의 덕진진과 광성진 등 여러 방어시설들이 축조되었다.

이 외에도 해안을 따라 갑곶돈대 등 많은 돈대가 건설되었고, 현재에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래문물의 도입과 관련된 또 하나의 유적인 강화읍 성당은 1900년에 완공된 한국 성공회의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그 가치가 높다.

읍 · 면

1.강화읍(江華邑)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24.96㎢, 인구 2만 296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관청리이다.

본래 강화부의 소재지이므로 부내면(府內面)이라 해 동문(東門)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칭은 그대로 두고 송정면(松亭面)의 일부와 장령면(長嶺面)을 편입했고, 당주동(唐州洞)은 송해면(松海面)에 넘겨주었다.

1938년 강화면으로 개칭되었고,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대체로 한강과 염하에 맞닿은 동쪽은 평지를 이루고 있고, 관청리의 북산(140m)과 남산(223m) 및 하점면과의 경계선상의 고려산(436m) 등 면의 서쪽은 구릉성 산지가 탁월하게 분포한다. 고려산에서 발원하는 동락천(東洛川)은 관청리의 시가지를 지나 염하로 흘러들어 간다.

동락천 하류의 평탄한 농경지에서는 벼농사뿐만 아니라 무 · 배추 · 양배추 · 오이 등 원예작물과 인삼과 같은 특용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관청리 · 신문리 · 갑곶리에는 관공서와 교육기관이 입지해 있고 시장 및 각종 상가도 밀집되어 있어 강화군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5일장인 강화장에서는 각종 토산품과 생필품이 거래되는데, 지금은 거의 상설시장화되어 있다. 교통은 1970년에 완공된 강화대교를 통해 육지부의 김포 · 서울과 바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문화유적으로는 관청리의 강화향교 · 고려궁지 · 용흥궁 · 강화동종 · 성공회강화성당 · 강화유수부 등이 있으며, 국화리의 보만정 · 강화산성, 월곶리의 연미정, 신문리의 석수문 등과 천연기념물인 갑곶리의 탱자나무 등이 있다.

관청(官廳) 1∼7리 · 신문(新門) 1∼4리 · 국화(菊花) 1∼2리 · 남산(南山) 1∼2리 · 갑곶(甲串) 1∼4리 · 용정(龍井) · 옥림(玉林) 1∼2리 · 월곶(月串) · 대산(大山) 1∼2리 등 26개 행정리가 있다.

  1. 교동면(喬桐面)

군의 서북부 바다에 위치한 면. 면적 47.17㎢, 인구 2,98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룡리이다. 고구려 때는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이란 이름을 얻어 교동현이 되었다. 1629년(인조 7)에 남양부(南陽府) 화량진(花梁鎭)에 있던 경기수영을 지금의 읍내리인 월곶진(月串鎭)으로 옮겨오면서 현에서 부로 승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화군에 편입되어 화개(華蓋), 수정(水晶) 등 2개의 면이 설치되었다가, 1934년에 두 면이 병합되어 교동면이 되었다. 남동부의 화개산(華蓋山, 259m)과 서부의 수정산(水井山, 126m)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낮은 평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구리 · 인사리 · 양갑리 · 삼선리 · 무학리 일대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해안 간척이 예로부터 활발히 이루어져 비옥한 농경지로 전환되었으며, 벼농사가 전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 · 콩 · 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경작지 면적도 군내에서 가장 넓고, 호당 경지면적도 군내에서 가장 높다. 논이 밭보다 면적이 훨씬 넓다.

근해에서는 도미 · 농어 · 숭어 · 흰새우 · 낙지 등이 잡히고, 갯벌에서 굴이 채취된다. 강화도의 인화곶(寅火串)과 마주하고 있는 동쪽 해안은 단애를 이루어 호두곶(虎頭串)이라 부르며, 섬의 서단은 말탄각(末灘角), 북단은 율두산곶(栗頭山串)이라 부르는 단애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읍내리에 교동읍성과 교동향교가 있다. 교동은 과거에 유명한 유배지였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연산군이 유배되었던 부근당(扶芹堂)인데, 지금은 집터만 남아 있다.

대룡(大龍)1∼2리 · 읍내(邑內) · 상룡(上龍) · 봉소(鳳韶) · 고구(古龜)1∼2리 · 동산(東山) · 삼선(三仙) 1∼2리 · 인사(仁士) · 지석(芝石) · 무학(舞鶴) · 난정(蘭井)1∼2리 · 서한(西漢) · 양갑(兩甲) 등 17개 행정리가 있다.

  1. 길상면(吉祥面)

군의 남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34.06㎢, 인구 6,5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수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길상산에서 면의 이름을 따서 초지 · 장흥 · 선두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지금의 길정리인 정하동(亭下洞)을 양도면에 넘겨주고, 부천군에 속해 있던 동검도(東檢島)를 넘겨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면 남쪽의 길상산(吉祥山, 336m)과 중앙부의 정족산(鼎足山, 220m) 등 낮은 산지와 구릉지가 많고, 길상계라 불리는 소하천이 길상산에서 흘러내려 와 토지를 적신다. 초지리와 장흥리 일대 해안을 따라서 넓은 간석지가 펼쳐지는데, 이를 막아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해안에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으며, 특히 1707년(숙종 33)에 완성된 선두포언은 안쪽에 광활한 농경지를 조성케 함으로써 강화도의 지속적인 간척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쌀이 가장 대표적인 농산물이고,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 · 감자 등 밭작물과 특용작물인 인삼 등이 있다. 배추 등 원예작물의 생산도 활발하다.

근해에서는 뱀장어 · 농어 · 숭어 등이 잡히지만 상대적으로 수산업의 비중은 미약한 편이다. 초지리는 과거 나루터가 있어 염하 반대쪽 김포 대명나루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지금은 두 지역을 연결하는 제2강화대교가 건설 중에 있어 교통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으로는 온수리에 마니산의 사고(史庫)를 옮겨 세웠던 정족산에 전등사가 있다. 전등사 경내에는 대웅전 · 약사전 · 범종이 있다. 산의 정상부에는 정족산성(일명 三郞城)이 있으며, 병인양요 때 이 곳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장군 승전비도 전등사 내에 있다.

해안을 따라서는 초지리의 초지진, 선두리의 택지돈대 등 안보 유적지가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길직리에 이규보의 묘소, 온수리에 성공회 성당이 있다. 최근에는 온수리에서 온천이 발견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온수(溫水) 1∼3리 · 선두(船頭) 1∼5리 · 동검(東檢) · 초지(草芝) 1∼2리 · 장흥(壯興) 1∼2리 · 길직(吉稷) 1∼2리 등 15개 행정리가 있다.

  1. 내가면(內可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29.79㎢, 인구 3,05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천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간점면의 안쪽이라 내간면이라 하다가 다시 내가면이 되어 고상 · 고하 · 구상 등 7개 리를 관할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위량면의 정포리 등이 내가면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쪽에 고려산(高麗山, 436m)과 혈구산(穴口山, 466m)이 솟아 강화읍 · 선원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북쪽에는 낙조봉(落照峰, 300m)이 하점면과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서쪽에는 국수산(國壽山, 193m)이 솟아 있다.

산지들 사이의 면의 중앙부는 낮은 구릉지를 이루는데, 구릉지 사이를 복개천이 흘러 고려지(高麗池)로 흘러들다가 다시 해안지대로 나와 간척지 사이를 흐른다.

간척평야인 망월평이 북쪽 하점면 해안까지 이어져 있어 벼농사가 활발하다. 쌀 이외에도 맥류 · 서류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인삼 및 과수도 많이 재배된다. 수산업은 외포리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는데, 숭어 · 뱀장어 등 각종 근해 어족들을 잡은 어선들이 모여들어 어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도로로는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통하는 301번 지방도와 강화읍에 이르는 국도가 있다. 석모도가 있는 삼산면 석포리로 연결되는 나루터가 있는데 석포리로 연결되는 나루터는 포천에도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고천리의 낙조봉에 적석사, 외포리 북쪽으로는 황청리봉화대가 있으며, 오상리에 북방식 고인돌인 내가고인돌이 있다. 해안을 따라서는 망양돈대(望洋墩臺) · 삼암돈대(三巖墩臺) · 계룡돈대(鷄龍墩臺) · 석각돈대(石角墩臺) 등이 있다.

고천(古川) 1∼5리 · 외포(外浦) 1∼2리 · 황청(黃淸) 1∼2리 · 구하(鳩下) 1∼2리 · 오상(鰲上) 1∼3리 등 14개 행정리가 있다.

  1. 불은면(佛恩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31.43㎢, 인구 4,51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두운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능촌 · 고잔 · 곶내 · 오두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불은면과 인정면의 두 개 면이 불은면으로 통합되었다.

서북부와 서부에 덕정산(德政山, 310m) · 퇴미산(退眉山, 338m) · 혈구산 등의 산이 솟아 있으며 서쪽 염하 방향으로는 대체로 낮은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하천이 서쪽 산지에서 발원해 동쪽 염하로 흘러들어 간다.

이러한 하천 유역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타 보리 등 밭작물과 인삼과 같은 특용작물도 많이 재배된다. 또 채소 등 원예작물의 재배도 활발하다. 물살이 센 염하를 통해서만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수산업의 발달은 미미하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통은 301번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해 강화읍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면 소재지인 두운리에서 갈라지는 지방도를 통해 동쪽 양도면 방향으로 연결되고 있다. 광성나루에서는 염하 건너 김포시 대곶면과 수운으로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염하를 따라서 안보관광 명소인 오두돈대(鰲頭墩臺) · 광성보(廣城堡) · 덕진진(德津鎭) · 용두돈대(龍頭墩臺) 등이 있으며, 13세기에 외성(外城)으로 축조된 강화전성(江華塼城)도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두운리에 허유전묘가 있다.

두운(斗雲) 1∼2리 · 삼성(三成) 1∼2리 · 삼동암(三同巖) 1∼2· 고릉(高陵) 1∼2리 · 오두(鰲頭) · 신현(新峴) · 덕성(德城) · 넙성(芿城) 등 12개 행정리가 있다.

  1. 삼산면(三山面)

군의 서쪽 바다에 위치한 면. 면적 45.62㎢, 인구 2,3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모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여러 섬으로 되어 제도면이라 해 석포도 · 매음도 · 석모도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교동군 송가면의 일리 등을 병합해 삼산면이 되었다.

면의 북부에는 상주산(上柱山, 264m), 남부에는 상봉산(上峰山, 316m) 및 해명산(海明山, 327m)이 있다. 북부와 남부 산지의 중앙에는 송가평(松家平)이라 불리는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북부와 남부의 산지는 원래 송가도와 석모도로 각각 분리된 두 개의 섬이었는데, 그 사이 갯벌을 간척해 넓은 평야가 개척되고 하나의 섬으로 붙어버렸다.

남부의 상봉산, 해명산의 남쪽도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남쪽의 어유정도(漁遊井島)와의 사이를 간척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평야지역에서는 벼농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보리와 인삼 등이 생산된다. 한우 · 돼지 등 가축도 사육되고 있다.

해안지역에서는 굴 · 백합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며, 서검도의 염전에서는 소금도 생산된다. 교통은 석포리에서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를 잇는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고, 섬 내의 도로망 발달은 미약하다.

문화유적으로는 매음리의 보문사(普門寺)에 석실과 마애석불좌상, 향나무 등이 있다.

석모(席毛) 1∼3리 · 상(上) 1∼2리 · 하(下) · 석포(石浦) · 매음(煤音) 1∼3리 · 서검(西檢) · 미법(彌法) 등 12개 행정리가 있다.

  1. 서도면(西島面)

군의 서쪽 끝, 경기만의 섬으로 이루어진 면. 면적 13.10㎢, 인구 6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문도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의 섬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주문도 등을 병합해 서쪽에 있는 섬이라 해 서도면이 되었다. 북쪽에 있는 말도(唜島)는 끝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주문도에 있는 봉구산(烽丘山, 146m)이며, 4개의 도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구릉지와 평지로 구성되어 있어 농업 발달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비율이 높으며, 밭작물로는 보리 · 감자 · 콩 등이 생산된다. 이외에도 채소와 인삼도 재배되고 있다.

사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어획량이 미미해 수산업의 발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굴 · 백합 · 모시조개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내가면 외포리로 1일 1회 여객선이 운항되어 강화 본섬과 연결되어 있으며, 면 내의 도로망은 빈약한 실정이다.

문화유적으로는 볼음도 동남쪽에 있는 주문도에 순군(巡軍)과 첨사진(僉使鎭)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관광자원으로는 대빈창지(待賓倉址), 강화 볼음도리(乶音島里) 당집, 망도고사지(望島古寺址) 등이 있다. 볼음도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주문(注文) 1∼2리 · 볼음(乶音) 1∼2리 · 말도(唜島) · 아차도(阿此島) 등 6개 행정리가 있다.

  1. 선원면(仙源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1.39㎢, 인구 7,45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월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선원사가 있어 선원면이라 해 연동 · 남산 · 대문 · 금월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한자 명칭만 바꿔 지금의 선원면이 되었다.

서부지역에는 혈구산 · 노적산(露積山) 등이 솟아 있어 면의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동쪽으로 면의 중앙부에 100m 내외의 구릉지가 완만하게 펼쳐지며, 북부와 남부 및 동부 해안지대는 평지가 넓게 전개되어 농업 활동이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콩 등이 생산되며, 특히 저지대를 중심으로 인삼 재배가 활발하며, 축산과 야채 등 근교농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를 301번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냉정리에 양도면으로 갈라지는 길이 분기되어 있어 강화읍 및 강화도 남단 여러 지역으로의 연결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고려시대 유적지들이 곳곳에 분포하는데, 고려가궐지(高麗假闕址) · 고려가왕릉(高麗假王陵) · 고려왕릉지 등이 있다. 염하의 해안가에는 용진진(龍津鎭) · 사강금돈대(四綱金墩臺) · 화도돈대(花島墩臺) · 용당돈대(龍塘墩臺) · 가리(加里)돈대 · 좌강(左岡)돈대 등 많은 군사 유적지들이 있다.

냉정리에 용흥궁, 선행리에 충렬사(忠烈祠) · 황련사(黃蓮寺), 지산리에 선원사지 등이 있다.

금월(錦月) 1∼2리 · 연(烟) · 지산(智山) 1∼2리 · 신정(神井)1∼2리 · 창(倉)1∼3리 · 선행(仙杏) · 냉정(冷井) 1∼2리 등 13개 행정리가 있다.

  1. 송해면(松海面)

군의 동북쪽, 한강 하류 건너 경기도 개풍군 대성면과 마주하고 있는 면. 면적 22.36㎢, 인구 3,08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솔정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송정의 이름을 따서 송정면이라 해 숭릉 · 뇌곶 · 포촌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삼해면과 송해면이 병합, 삼해와 송정의 이름을 따서 송해면이 되었다. 1983년에는 인근 하점면의 양오리가 이 면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서남부의 고려산이 하점면 · 내가면 · 강화읍과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고 남쪽에는 북산이 강화읍 관청리와의 사이에 솟아 있다. 그 외 면의 중부와 북부는 완만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를 금곡천(金谷川)과 유천(流川)이 흐르다. 한강으로 흘러들어 주변에 비옥한 경작지가 형성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콩 등이 많이 산출되고, 인삼도 많이 재배된다. 이외에도 야채 · 양계 · 축우 등 근교농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수산업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교통은 서울과 연결되는 48번 국도가 면의 서남부를 관통하고 있고, 이 국도와 지방도가 만나는 하도리는 교통의 요지이다.

당산리에 있던 승천포와 송정포는 개성으로 통하는 나루터였고, 송나라까지도 이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기능이 상실되었다.

문화유적으로는 당산리에 열녀각(烈女閣) · 승천보(昇天堡), 숭뢰리에 숙룡돈대(宿龍墩臺), 하도리에 반환정(盤桓亭) · 고분과 지석묘 등이 있다.

솔정(率丁) 1∼2리 · 신당(申唐) · 하도(下道) 1∼2리 · 상도(上道) 1∼2리 · 숭뢰(崇雷) 1∼2리 · 당산(堂山) · 양오(陽五) 1∼2리 등 12개 행정리가 있다.

  1. 양도면(良道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48㎢, 인구 3,9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일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상도면이라 해 장두 · 장하 · 조산 · 능산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위량과 길상면의 2개 리를 병합해 위량과 상도의 이름을 따서 양도면이 되었다.

면의 중앙부에 진강산이 솟아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고, 서북 해안지대와 남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촌락은 이 곳 서북 해안지대와 남부에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진강선 남쪽 기슭에는 고려시대 이래로 유명한 진강 목장이 있었고, 조선 태조가 타던 명마 여덟 필 중의 한 필이 이 목장에서 나온 말이다.

농업이 이 면의 주된 산업이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 · 콩 · 보리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인 인삼의 재배도 비교적 활발하다. 수산업은 농업에 비해 그 발달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교통은 301번 지방도가 면의 서부를 거의 남북으로 통해 인산리에서 308번 지방도와 만나고 있어 비교적 편리하고 건평리 도선장(渡船場)에서는 건너편 석모도로 이어지는 뱃길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길정리에 석릉 · 곤릉, 능내리에 가릉이 있다. 이외에도 정제두(鄭齊斗) · 정유성(鄭維成) · 김취려(金就礪) · 권개(權愷) · 이건창(李建昌) 등의 묘, 고려 고분군 등이 산재해 있으며, 해안에는 굴암돈대(屈巖墩臺) · 건평돈대(乾坪墩臺) 등이 있다.

하일(霞逸) · 길정(吉亭) · 도장(道場) 1∼2리 · 조산(造山) · 능내(陵內) · 건평(乾坪) · 삼흥(三興) 1∼2리 · 인산(仁山) 1∼2리 등 11개 행정리가 있다.

  1. 양사면(兩寺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26.45㎢, 인구 1,84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교산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강화 북쪽에 절이 있으므로 북사면이라 해 냉정 · 삼성 · 덕현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사면의 송산 등 4개 리를 병합해 북사와 서사의 이름을 따서 양사면이 되었다.

별립산(別立山, 400m) · 봉천산(奉天山, 291m)이 솟아 하점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북동부에는 별악봉(別岳峰, 167m)이 솟아 있다. 북부에 교항천(橋項川)이, 동부에 덕하천(德下川)이 흐르고 있으며, 특히 덕하천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경작지와 취락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으로는 쌀 · 보리 · 콩 등이 산출되며, 인삼 · 채소 등의 작물도 재배되고 있다. 최근에는 양계업이 활발하다. 대체로 인구가 적게 분포하고 있어 농업적 토지 이용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산업의 발달도 미미한 편이다.

교통은 서울로 이어지는 48번 국도가 면의 서쪽 끝 인화리까지 이어져 있고, 301번 지방도가 철산리를 기점으로 강화읍과 하점면으로 통하고 있다. 48번 국도의 끝 인화리에 있는 인진나루에 교동로 이어지는 수운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해안 일대에 철곶돈대(鐵串墩臺), 북성리에 구등돈대(龜登墩臺) · 북장궂돈대, 인화리에 인화성돈대 · 인화진터, 철산리에 철곶보 등의 돈대와 보가 있다.

교산(橋山) 1∼2리 · 철산(鐵山) · 덕하(德下) 1∼3리 · 북성(北省) 1∼2리 · 인화(寅火) 1∼2리 등 10개 행정리가 있다.

  1. 하점면(河岾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20㎢, 인구 4,00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봉리이다.

조선시대 이래 하음면(河陰面) · 간점면(艮岾面)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2개의 면과 외가면의 일부를 합해 하음과 간점면의 이름을 따서 하점면이 되었다.

북부에 별립산(別立山, 400m) · 봉천산(奉天山, 291m)이 솟아 양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동부에 고려산(高麗山, 436m) · 시루메산 · 낙조봉(落照峰, 350m)이 있어 내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외 면의 중앙부에는 동서로 삼거천(三巨川)이 흐르고 있어 대체로 평지가 펼쳐져 있다.

삼거천의 유역 평야 일대는 토질이 비옥하고 관개시설도 잘 구비되어 있어 농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콩 · 감자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고, 인삼도 많이 재배한다. 이외에도 채소 · 과수 등 근교농업도 발달했다.

삼거천 유역의 망월평은 과거 넓은 간석지였고 망월언 · 반월언 등에 의해 매립된 대규모 간척평야로서 길상면의 선두평과 더불어 강화군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다양한 관광자원이 면 내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교통은 서울까지 이어지는 48번 국도가 서북부를 관통하고 있고 301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이어져 있어 육상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삼거리 · 신삼리 · 부근리 등에 고인돌군(群)이 형성되어 있고, 그 중 부근리의 강화고인돌이 가장 유명하다.

신봉리의 봉천산에는 고려 때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축단한 봉천대(奉天臺)가 있으며, 부근리에는 백련사 · 봉정 · 치마대, 장정리의 봉은사지에는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이 밖에 망월리에 망월돈대 및 장성(望月墩臺及長城), 창후리에 무태돈대(無殆墩臺) 등의 유적지가 있다.

신봉(新鳳) 1∼2리 · 장정(長井) 1∼2리 · 부근(富近) 1∼2리 · 삼거(三巨) 1∼2리 · 신삼(新三) 1∼2리 · 망월(望月) 1∼3리 · 창후(倉後) 1∼2리 · 이강(梨江) 1∼3리 등 18개 행정리가 있다.

  1. 화도면(華道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42.35㎢, 인구 4,36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방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하도면이라 해 사기 · 동막 · 흥왕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37년에 음이 가까운 화(華)자를 써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면의 중앙부에 마니산 상봉(上峰, 254m) · 숙피산(椒皮山, 250m) 등이 솟아 있으나, 북부와 남부에는 대체로 낮은 평지가 전개되어 있어 농업이 활발하며 촌락이 밀집 분포한다. 특히 북부의 저지대는 토양이 비옥하고 수리시설도 잘 되어 있고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콩 · 야채 · 인삼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수산업은 다른 면에 비하면 비교적 활발한 편이며, 굴 · 가무라기 양식과 갯지렁이 채취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도로는 마니산을 중심으로 해 면을 일주하는 348번 지방도가 있으나, 교통은 대체로 불편한 편이다.

마니산 주변에는 다양한 국가유산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니산 동쪽에 위치한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선사 회정(懷正)이 창건했다고 하며, 대웅전의 연꽃무늬는 조각이 특수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에 높이 5.1m, 밑단 4.5m, 윗단 2.3m의 석단으로 축조되어 있는 참성단에서는 지금도 개천철 행사가 베풀어지며, 전국체육대회 때 성화가 채화되기도 한다.

1713년(숙종 39년)에 해안 방어를 위해 축조된 장곶돈대와 사기리에 있는 수령 400년의 탱자나무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후애돈대(後崖墩臺) · 양암(陽巖)돈대 · 송곶(松串)돈대 · 동검북(東檢北)돈대 · 미곶(彌串)돈대 · 북일곶(北一串)돈대 · 점암(點巖)돈대 등 여러 돈대가 있다.

상방(上坊) 1∼2리 · 내(內) 1∼4리 · 문산(文山) · 덕포(德浦) 1∼2리 · 사기(沙器) · 동막(東幕) · 흥왕(興旺) 1∼2리 · 여차(如此) 1∼2리 · 장화(長花) 1∼2리 등 17개 행정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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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http://www.ganghwa.inch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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