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장흥부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일경(一卿)
  • 시호충정(忠貞)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임사화
  • 본관청해(靑海)
  • 사망 연도1724년(영조 즉위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흥부사|전라좌도 수군절도사|삼도통제사
  • 출생 연도1651년(효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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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장흥부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훈련원 주부·도총부도사·경력을 거쳐, 고원군수·낙안군수(樂安郡守)·장흥부사가 되었다.

1701년(숙종 27) 나주토포사(羅州討捕使)에 발탁되고 이어 우림위(羽林衛)의 사복장(司僕將)·우후(虞候) 등을 지냈다. 철산부사를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체배(遞拜)되어, 임기를 마친 후 선전관에 환배(還拜)되었다. 그 뒤 장단방어사를 거쳤다.

이 후 전라병마절도사에 임명되고 삼도통제사에 승진하였다. 1719년 어영중군(御營中軍)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금군별장 겸 도총부부총관에 전직되었다가, 다시 통제사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로 노론의 대신 김창집(金昌集)이 유배도중 통영을 지나자, 이수민은 원문(院門)에 나가 인사를 하고 비장을 시켜 김창집을 호행(護行)하도록 한 것으로 소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이어 목숨만은 구하여 제주 정의(旌義)에 유배된 지 1년 만에 그곳에서 죽었다.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어 용인 굴암(窟巖)으로 환장(還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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