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원 출신. 1919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하여 만주일대에서 일제와 항쟁하다가 1920년 9월 강병관(康秉官)·강석훈(康錫勳) 등과 함께 노령(露領)으로 넘어갔다.
그해 12월 국내의 일본관청 파괴와 일제주구의 토멸 등을 위하여 노령 시지미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가칭: 임시대한독립군)을 조직하여 대장직을 맡았다. 대원은 문창학(文昌學)·강병관·강석훈·최치능(崔峙能)·최영걸(崔英傑) 등 15명이었다.
웅기(雄基)를 습격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모으기로 계획했으나, 일제의 특별경계가 강화되어 계획을 변경하였다. 1922년 1월 5일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경찰 1명을 사살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 뒤 혼춘(琿春)에 근거를 두고 한민회(韓民會) 등 독립단체와 연락하여 일본 경찰과 친일파 숙청에 나섰다가 1922년 11월 20일 문창학·최시능 등과 함께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3년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