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도미옥사건

  • 역사
  • 사건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1578년(선조 11) 양사(兩司 : 사헌부·사간원)가 당시의 도승지 윤두수(尹斗壽), 경기감사 윤근수(尹根壽), 이조좌랑 윤현(尹晛) 등 이른바 삼윤(三尹)을 탄핵한 사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창 (대구대학교, 동양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578년(선조 11) 양사(兩司 : 사헌부·사간원)가 당시의 도승지 윤두수(尹斗壽), 경기감사 윤근수(尹根壽), 이조좌랑 윤현(尹晛) 등 이른바 삼윤(三尹)을 탄핵한 사건.

내용

이 사건은 세 윤씨를 탄핵했다 하여 ‘삼윤의 논핵’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선조 초기에 신진사류를 주축으로 한 붕당과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기성사류 사이의 싸움에서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붕당이 동인·서인으로 나누어진 뒤 처음으로 야기된 정쟁이라는 점이다.

당시 같은 전랑(銓郎)으로 있던 윤현과 김성일(金誠一)은 붕당이 서로 다른 관계로 의견이 맞지 않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때 윤현의 작은아버지인 윤두수·윤근수 형제가 동인의 세력을 탄압, 억압했다.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동인 김성일은 진도군수 이수(李銖)가 삼윤에게 쌀을 뇌물로 바쳤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 사실을 경연석상에서 폭로하였다. 이에 대간이 이수를 탄핵함으로써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어 부제학 허엽(許曄)이 양사가 뇌물을 받은 삼윤을 탄핵하지 않는 것을 탄핵하자 대간은 다시 삼윤의 죄를 주청했다. 이 때 직제학 김계휘(金繼輝)와 척신 심충겸(沈忠謙) 등 서인은 삼윤을 옹호했다. 반면 대사헌 박대립(朴大立)과 대사간 이산해(李山海) 등 동인을 중심으로 한 양사는 삼윤의 죄상을 공격하며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을 계기로 동·서 분당의 싸움이 격화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이수를 원망하던 진도의 저리(邸吏) 한 사람이 이수가 삼윤에게 쌀을 바친 사실을 고함으로써 삼윤은 결국 파직되었다. 이 사건은 붕당정치의 여파로 일어난 초기의 사건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참고문헌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당의통략(黨議通略)』

  • - 『이조당쟁사연구』(강주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