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철성(鐵城). 자는 자진(子眞), 호는 야로(野老). 아버지는 참판 이언명(李彦明)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승지 박훈(朴薰)의 딸이다. 일찍이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 등과 도의(道義)로 교우관계를 맺었다.
일찍이 보우(普雨)의 인심혹란(人心惑亂)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580년 어사 송언신(宋言愼)의 천거로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10년 뒤 다시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소모장(召募將)으로 의병을 모집, 왜적과 싸웠다. 만년에는 견곡촌(堅谷村)에 별장을 짓고 둔세(遯世)의 뜻을 지켰다. 성주의 유계서원(柳溪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 『야로당문집(野老堂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