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44년(영조 20)에 정언으로서 김재로(金在魯)·송인명(宋寅明)·조현명(趙顯命) 등 3정승을 무고하고, 탕평책(蕩平策)을 저지, 조롱하였다 하여 함경도 경성(京城)에 유배되었다. 이 때 대사헌 김유경(金有慶)이 나서서 적극 구원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그 이듬해에 가서야 유배가 취소되었다.
이어 정언 송형중(宋瑩中)이 이러한 직간(直諫)의 문을 닫아 사적(仕籍: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깎아버린다면 앞으로 나라에 간특한 일이 있어도 누가 감히 나서서 논척(論斥)하겠느냐고 구원하기도 하였지만, 10년 동안 폐고(廢錮)되어 마침내 상심하여 죽었다.
이에 영조도 일찍이 이언세의 절의를 높이 사서, 나라에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이 종사관(從事官)이 될 만하다 하고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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