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8년 진주(晉州)에 사는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 강상죄(綱常罪: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 죄)로 엄벌하자는 주장이 논의되었을 때, 세종이 엄벌에 앞서 세상에 효행(孝行)의 풍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서적을 간포(刊布)해서 백성들에게 항상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또한, 권부(權溥)의 『효행록(孝行錄)』에 우리나라의 옛 사실들을 첨가하여 국민교화서적(國民敎化書籍)으로 삼고자 하였다.
권채는 서문에서,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참고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속에서 효자·충신·열녀로서 특출한 사람 각 110명씩을 뽑아 그림을 앞에 놓고 행적을 뒤에 적되 찬시(讚詩)를 한 수씩 붙였다. 이 시는 효자의 경우 명나라 태종(太宗)이 보내준 효순사실(孝順事實) 중 이제현(李齊賢)이 쓴 찬을 옮겨 실었으며, 거기에 없는 충신·열녀편의 찬시들은 모두 편찬관(編纂官)들이 나누어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이루어진 뒤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이 이 책의 체재와 취지를 본받아 간행되었으며, 일본에도 수출되어 이를 다시 복각한 판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3권 1책. 인본(印本). 규장각도서의 세종조 간본에는 1432년 맹사성(孟思誠)·권채(權採)가 쓴 서(序)가 있으며, 그 뒤 성종·선조·영조시대의 중간본이 전해진다. 영조시대 중간본은 강원감영에서 간행된 것으로, 강원감사 이형좌(李衡佐)의 서와 간기(刊記)가 보태어져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알기 쉽도록 매편마다 그림을 넣어 사실의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고, 본문 끝에는 원문을 시구(詩句)로 요약, 정리하였으며, 그 가운데 몇 편에는 시구에 이어 찬(讚)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1982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의하여 초기 복각본(覆刻本)을 대본으로 하고 여기에 국역과 해제를 붙인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삼강행실충신도(三綱行實忠臣圖)·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효자도에는 「순임금의 큰 효성(虞舜大孝)」을 비롯하여 역대 효자 110명을, 충신도에는 「용봉이 간하다 죽다( 龍逢諫死)」 외 112명의 충신을, 열녀도에는 「아황·여영이 상강에서 죽다( 皇英死湘)」 외 94명의 열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효자 4명, 충신 6명, 열녀 6명을 싣고 있다.
『삼강행실도』의 밑그림에는 안견(安堅)의 주도 아래 최경(崔涇)·안귀생(安貴生) 등 당시의 유명한 화원들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에 안견의 그림으로 전한다는 기록이 있고, 이러한 유형의 작업에는 작업량으로 볼 때 여러 화원이 동원되고 실제 작품에서도 몇 사람이 나누어 그린 흔적이 발견된다.
구도는 산·언덕·집·울타리·구름 등을 지그재그로 구획하고, 그 가운데 마련된 공간에 이야기의 내용을 아래에서 위로 1∼3장면을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인물은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표현하였고 옷주름을 자세히 나타내었는데, 특히 충신편에서 말을 탄 장수들의 격투장면이 생동감 넘친다. 산수 그림은 효자편의 「문충의 문안(文忠定省)」·「이업이 목숨을 바치다(李業授命)> 등에는 당시 유행한 안견풍의 산수표현이 보인다.
열녀편의 「강후가 비녀를 빼다(姜后脫簪)」·「문덕의 사랑이 아래에 미치다(文德遠下)」 등에 배경으로 삼은 건물의 표현은 문청(文淸)의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나 기록상의 「등왕각도(滕王閣圖)」 등과 더불어 당시에 많이 그려진 계화(界畫:기화(起畫). 화법의 하나. 단청을 할 때 먼저 채색으로 무늬를 그린 다음 빛깔과 빛깔의 구별이 뚜렷하게 먹으로 줄을 그리는 일)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삼강행실도』는 백성들의 교육을 위한 일련의 조선시대 윤리·도덕 교과서 중 제일 먼저 발간되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이 읽혀진 책이며, 충(忠)·효(孝)·정(貞)의 삼강(三綱)이 조선시대의 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적 기반으로 되어 있던 만큼, 사회·문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
또한, 조선시대 판화의 주류를 형성하는 삼강이륜계통의 판화들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 시초라는 점에서 판화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인물화와 풍속화가 드문 조선 전기의 상황으로 볼 때 판화로나마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우리나라 인물은 평량자(平凉子) 등 조선 전기의 복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윤리 및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며, 또한 국어사의 연구 및 전통 회화사의 연구를 위하여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