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석류(錫類), 호는 노산(魯山)·희현당(希賢堂). 이천기(李天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육(李稑)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종미(李宗美)이며, 어머니는 이징(李澄)의 딸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 집현전에 들어갔다. 그 뒤 수찬에 올라 강희안(姜希顔)과 더불어 금은(金銀)으로 불경을 썼다. 이어서 병조·예조·이조의 정랑을 거쳐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퇴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