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명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성,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동포(東圃)
  • 치순(穉順)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홍경래의 난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817년(순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원릉참봉|우부승지|대사성
  • 출생 연도1767년(영조 4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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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성,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순(穉順). 호는 동포(東圃). 선조의 넷째 아들인 신성군 이우(信城君 李珝)의 후손이며, 이직(李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황(李廷惶)이다. 아버지는 공조좌랑 이염(李琰)이며, 어머니는 원경하(元景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門蔭)으로 원릉참봉(元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에는 참봉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를 거쳐 그 이듬해에는 전적이 되었다. 1806년 부수찬으로 있으면서 의리를 지켜나가기를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며, 그 뒤 우부승지를 지냈다.

1812년에 대기근이 연속되고 또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평안도감진사(平安道監賑使)로서 백성들의 구호와 관군의 군량미조달을 감독하는 한편, 반란이 진압된 뒤에는 안핵사(按覈使)를 겸하여 민심수습에 전력하였다. 그 뒤 좌부승지와 좌승지를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계되어 성균관의 대사성이 되었다.

뒤이어 완원군(完原君)을 습봉(襲封)하고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이 되었는데, 특히 병조참판으로 있을 때는 군비를 확충하고 군기를 확립하여 국내외의 도전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뒤 다시 동지의금부사에 취임해서는 지배층의 기강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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