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심원(深遠)
  • 완이(莞爾)
  • 시호정익(貞翼)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771년(영조 4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예조참판|형조판서
  • 출생 연도1721년(경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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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初名)은 이유목(李惟穆). 자는 심원(深遠), 호는 완이(莞爾). 선조의 9남인 경창군 이주(慶昌君 李珘)의 5대손이며, 서천군(西川君) 이황(李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욱(李廷煜)이다. 아버지는 서윤 이재(李在)이며, 어머니는 윤세위(尹世緯)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7년(영조 23) 유학으로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그 해 정언이 되고, 곧 지평(持平)을 거쳐 수찬(修撰)이 되었다. 1751년에는 정언으로 당역자(黨逆者) 9인을 탄핵하다가 영남에 유배되었다. 그 뒤 세자시강원의 관원으로 복직되었으나 이전에 탄핵한 당역자들과는 같이 벼슬할 수 없다고 사퇴하였다. 이에 왕의 분노를 사서 삭탈관직된 뒤 도성문 밖으로 쫓겨났으나, 왕이 뒤에 그 충의를 이해하고 다시 응교에 임명하였다.

1754년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2년 통정대부로 승지에 오르고, 그 이듬해는 대사간이 되었으며, 1767년에 다시 예조참판에 올라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그 뒤 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뇌연집(雷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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