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서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의용군, 참의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백파(白坡)
  • 이칭송갑(松甲), 옥산(玉山)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3·1운동
  • 사망 연도193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0년(고종 27)
  • 출생지평안북도 강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영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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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의용군, 참의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옥산(玉山) · 송갑(松甲). 호는 백파(白坡). 평안북도 강계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망명하여, 남만주에 설립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 강계지역의 일본군 영림창(營林廠)을 습격하였으며, 그 해 겨울에는 의용군 제2중대 군의(軍醫)로서 활약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의 북간도 교민 호적 조사원으로서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24년 이후에는 참의부(參議府)의 일원으로 부하를 거느리거나 단신으로 만주와 국내에서 일제의 영사관 · 경찰서 · 파출소 등 100여개소를 습격, 방화, 파괴하는 한편, 일본인 관민 400여명을 살상하는 격렬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혁신의회와 민족유일당 재만책진회의 비서로 활약하였다. 또한, 김일산(金一山) 등과 조선혁명군 대본영을 조직하는 등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28년 길림(吉林)에서 잡혀 신의주지방법원 ·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경성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마포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4·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3)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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