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준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일제기관 파괴, 일본 고관 처단 등의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병준(秉俊), 한권웅(韓權雄)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1929년
출생지
평안북도 위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일제기관 파괴, 일본 고관 처단 등의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병준(秉俊)·한권웅(韓權雄). 평안북도 위원 출신. 1922년 김창균(金昌均)과 만주로 가서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3년 우편으로 운반중이던 일본돈 1,500엔을 빼앗아 군자금으로 하였고, 평안북도 경찰부수사대와 총격을 벌여 도피하였으며, 강계경찰서 청풍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을 죽이고 방화하였다.

1924년 참의부(參議府) 제1중대 제1소대장으로서 이춘화(李春和)·김창균·현성희(玄成熙)·이명근(李明根)·김여하(金呂河)·전창식(全昌植)·장창헌(張昌憲) 등과 함께 평안북도 고산진 하류 마취(馬嘴) 부근에 하선한 사이토[齋藤實]총독 일행의 선박에 사격을 가하며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 김창균과 밀정 한일룡(韓一龍)·장갈성(張渴成)을 각각 사살하였고, 이듬해 다시 강계에 진입하여 활동하던 중 일본경찰과 교전하였다. 1926년말 만주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한국공산주의운동사』4(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동아일보(東亞日報)』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