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병조참판, 총융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하숙(夏叔). 우의정 이완(李浣)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효종 초에 현감·도총부경력 등을 거쳐 1654년(효종 5) 어영대장, 1656년 충청도수군절도사, 1660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이듬해에 과오를 범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복직되어 경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679년(숙종 5)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을 때 덕원에서 거제도로 이배되던 송시열(宋時烈)을 중로에서 대접하였다가 탄핵을 받아 삭출당하였다. 1680년 송시열이 풀려나자 다시 등용되어 1682년 병조참판, 이듬해 총융사에 이어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삼수에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석방,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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