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우윤, 대사헌,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73년(성종 4) 북평사에 임명되어서는 적의 침략에 대비가 소홀하였다는 이유로 고신(告身)을 몰수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귀향하여 잠시 벼슬에 뜻을 버리고 형제들과 학문에 열중하였다가 얼마 뒤 다시 관직에 복귀하였다.
1478년 병조정랑 겸 승문원교감이 되었고, 이듬해는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김산군수를 자청하였다. 당시 김산군에는 개령(開寧)에 요승(妖僧)이 있어 온갖 방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였는데, 아전을 시켜 요승을 잡아 처치하고 요승의 근거지를 불태워서 민폐를 막았다.
1485년 응교, 1488년 사간을 지내고, 이어 양산군수 · 의정부사인이 되었다. 1494년 종부시정이 되어서는 임금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목멱산에 치제할 때 행향사(行香使)가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대사간에 올랐다.
1496년 동부승지 · 좌부승지가 되었고, 이듬해 성종의 유고(遺稿) 정리와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재시행을 청하였다. 이어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98년 전라도관찰사에서 체임(遞任)되었다. 1500년 겸동지성균관사가 되고, 이어 한성부우윤 ·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한성부의 좌윤을 지냈으며, 1502년 다시 한성부의 좌 · 우윤이 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논구유생사(論救儒生事)」의 수창자로 지목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당하였다. 1506년(중종 1) 신원되어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이어서 자손녹용(子孫錄用)의 은전을 받았다. 1844년(헌종 10) 경상남도 고성(固城)의 위계서원(葦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 『매헌실기(梅軒實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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