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8년(우왕 4) 10월 판도판서(判圖判書)로서 전 사재령(司宰令) 한국주(韓國柱)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구주절도사(九州節度使: 九州探題) 미나모토[源了浚: 令川了浚]에게 금·은·인삼 등 후한 선물을 주고 왜구의 침입을 금하도록 요청하였다.
그 이듬해 7월 피로인(被虜人) 230여명을 쇄환(刷還)하여 돌아왔다. 뒤에 밀직부사에 올랐으며, 1383년 8월 성절사(聖節使) 김유(金庾)와 함께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갔으나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곳에 억류되었다가 1385년 4월 풀려나 돌아오는 도중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