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형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68년(선조 1) 원접종사(遠接從事)가 되어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였다. 1573년 이조정랑 · 검상 · 사인 · 집의 · 전한 · 직제학을 거쳐 승지에 이르러 자급(資級)을 뛰어넘어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통정대부 때 내직으로는 병조 · 호조 · 형조의 참의와 판결사 및 도승지를 지냈고, 외직으로는 황해 · 충청 · 전라 · 경상 4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1585년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으며, 뒤에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었다. 이 때 형조 · 예조 · 이조의 참판, 한성부의 좌윤 · 우윤, 부제학 · 대사헌 · 동지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 대관의 장으로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 국문에 참여하는 공을 세워, 이듬해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책록되고 아천군(鵝川君)에 봉해졌다. 이 해 성절사(聖節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1591년 형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뒤에 정헌대부(正憲大夫)가 되어 형조 · 예조 · 공조의 판서, 좌 ·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헌신하였다. 죽은 뒤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아천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鵝川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사람됨이 정직해 아첨을 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홍문관정자 재임 시에는 권간(權奸)에 의해 북막(北幕)에 좌천되기도 하였다. 청렴해 가산을 돌보지 않아 재상의 반열에 있을 때에도 가난한 선비처럼 생활했고, 효도와 우애도 지극했다. 시호는 의간(懿簡)이다. 저서로는 『북애집』 1권이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백헌집(白軒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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